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한식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한식에 무관심한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동양의 미식 세계를 알려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9년 신사동, 2011년 뉴욕에 문을 연 정식당은 이후 미슐랭 2스타를 받고 ‘2014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는 한국 레스토랑으로는 유일하게 20위에 랭크되었다. 올해는 10위에 올랐다! 늘 남의 나라 레스토랑 수식어인 줄만 알았던 그런 타이틀이다. ‘정 식당’이 아닌 ‘정식 당’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이곳의 수장은 임정식 오너셰프다.
최근 정식당에 이어 강남에서 가장 흥미로운 ‘퓨전 한식’을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밍글(Mingle)’이라는 이름처럼 한식을 근간으로 일식, 스페인, 프렌치 레시피를 적절하게 적용해 요리한다. 밍글스에서 선보이는 퓨전 한식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부분은 ‘퓨전’이 주는 부정적인 요소를 걷어냈다는 것이다. 그동안 퓨전, 그 중에서도 퓨전 한식이라고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허울만 좋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밍글스는 재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명확한 이해 그리고 재료를 선정하는 까다로운 안목을 더해 한식을 어떻게 하면 발전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지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너무 친숙하기에 외면받았던 한식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개화옥은 시대를 앞서간 한식당이었다. 2004년 젊은이들이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일리 커피에 빠져있을 때 허름한 골목길 한 구석에 둥지를 튼 개화옥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한식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세련됐지만 절제미가 있고, 소박하지만 정갈했다. 그런 개화옥이 2010년 신사동에 새로운 공간을 오픈했다. 이전보다 규모는 더 커졌고, 인테리어는 좀 더 모던해졌다. 규모가 커진 만큼 따뜻함은 조금 사라졌지만 방짜 유기에 정성스럽게 담긴 음식과, 기본 상차림으로 내오는 옥수수와 구운 마늘은 여전히 반갑다. 육회, 차돌박이와 채소무침, 불고기 등이 대표메뉴인데, 그 중에서도 개화옥의 맨 얼굴과 같은 된장국수를 추천한다. 멸치로 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낸 맑은 된장국에 투박한 면이 들어가는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소박한 국수에 자꾸 손이 간다.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특히 좋아하는 이들이나, 특별한 모임 혹은 외국인과 식사 계획을 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모던한식’을 표방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이름에는 한국 요리의 발효 과학이 돋보이는 콩과 장을 주원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내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시그니처 메뉴는 15년간 묵힌 씨간장 소스와 의성 흑마늘 퓌레를 곁들인 한우 등심구이, 고산 윤선도 반가 기법의 명인 간장으로 담은 꽃게장 등, 말만 들어도 고급스럽다. 인수대비의 집무실로 쓰이던 가옥에 입점해 있어 한국적 정취를 만끽하며 식사할 수 있다. 덕수궁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도 매력적이다. 새봄, 계절 메뉴로 냉이 새우 완자를 올린 오디청드레싱의 봄나물 샐러드, 전복 부추 숙회 샐러드, 차갑게 먹는 삼계 마늘 수프를 선보일 예정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옐로테일 레스토랑에서 경험했던 아키라 백 셰프의 요리들. 서울에 연 그의 모던한식 레스토랑 '도사'를 통해 다시 그 인연을 맺는다. 한국이름 백승욱. 뉴욕 노부에서 수석 셰프로 일하며 아키라 백 셰프로 유명해졌지만, 서울에서만큼은 그의 이름을 내걸었다. 그의 오랜 시그니처 메뉴인 튜나 피자를 비롯, 누에가 들어 있는 서울가든, 훈제향이 가득 퍼지는 스테이크 등 흥미로운 메뉴가 꽉 차 있다.
이십사절기의 셰프 유현수(토니 유)는 한식 분야에서 2년간 요리를 배우고 곧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호주, 미국 등지에서 스타주(무인견습) 경험을 거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선재스님 밑에서 사찰음식까지 학습했다. 사찰음식과 시골장의 지식(기법)을 차용한 모던 코리안 셰프인 유현수 셰프의 요리 컨셉은 '법고창신'이라 할 수 있겠다. 전통적인 레시피와 토속적이고 야생적인 재료를 사용하지만 넓은 범주에서 컨템퍼러리 퀴진에 속한다. 서양식 플레이팅을 선보이지만 수묵화의 농담과 여백이 느껴지는 독창적인 플레이팅에서는 현대의 음식문화와 잊혀진 전통의 문화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의 한정식 상차림은 넓은 상에 스무 개가 넘는 반찬을 까는 형태가 아니다. 황교익 요리 평론가에 따르면 1인상이 바로 전통 상차림의 기본. 권숙수는 이 1인 상차림의 전통을 확실히 지키는 모던 한식당이다. 카펠리니 면의 능이 국수, 두부와 잣으로 뭉친 꼬시래기에 올라간 청주에 푹 찐 전복,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상상 이상의 떡갈비 등 거의 모든 접시가 시그니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독특하고 멋지다. 특히 그 자리에서 불을 붙여 익히는 은어와 대게 솥밥은 같이 나오는 고명에 비벼 먹으면 칼로리 걱정 따위를 할 겨를도 없는 마법의 맛. 고기 구울 걱정 없고 자기 상에 있는 건 오로지 내 차지라는 것도 어쩌면 가족 식사에선 강점이 될 수 있다. 오빠들은 항상 지나치게 먹으니까. 글 박세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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