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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 아빠의 청춘

1950년대 서울 한복판에는 전차가 다녔고, 한복과 양장을 입은 여자들이 한 거리를 걸었다. 60년대에는 길이를 법적으로 제한한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전쟁의 아픔도 있었지만, 근사한 일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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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가 된 이발소, 성우이용원

이제는 역사가 된 이발소, 성우이용원

50-60년대 들어 경제가 살아나고 몸단장에 돈을 좀 쓸 수 있게 되면서 허름한 이발소는 동네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진짜 그때 그 시절 이발소들 중 살아남은 곳이 몇 없지만, 80년의 역사를 가진 성우이용원은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의 이발사 할아버지는 아직도 머리를 다듬은 후 정통 방식대로 독일산 면도칼로 면도를 한다. 몇몇 드라이기는 너무 오래돼서 돼지코를 끼워 사용할 정도다. 고전적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식 헤어 커트를 받을 수 있는 20-30대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복고풍 이발소도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홍대 밤므나 한남동의 헤아를 추천한다.

▶ 성우이용원 마포구 효창원로 97길 4-1, 02-714-2968
 밤므 마포구 양화로 6길 93 2층, 02-322-8577
 헤아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57, 02-511-9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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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목욕탕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목욕탕

목욕탕에서 엄마한테 이태리타월로 등 빨개질 때까지 빡빡 때를 밀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깨끗함’이 뭔지 모른다. 하늘색 정사각형 타일로 된 공중 목욕탕의 황금기는 1925년 서울 최초의 목욕탕에서 시작한다. 70년대까지 성행하던 목욕탕은 그 후로 개인 욕실이 딸린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주춤해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린시절 목욕탕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따라 온 같은반 남자아이의 모습까지도. 옛날식 목욕탕을 찾고 싶다면 1966년 개업 이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원삼탕에 가보라. 어떻게 사람들 다 보는데 옷을 벗냐고? 한남동 카페 옹느세자매의 목욕탕식 좌석에서라면 옷 다 껴 입고도 왠지 벗어야 할 것만 같은(아님 벗은 것만 같은) 묘한 목욕탕 간접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원삼탕 용산구 원효로 123-12, 02-717-7674
▶ 옹느세자매 용산구 이태원로 54길 47, 02-794-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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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사들의 단골방, 다방

젊은이들이 다방에 모여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은 건 이미 50-60년대부터였다. 1956년 개업 이후 쭉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학림다방이 대표적이다. 이곳이 유명해진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문학과 예술계 인사들이 이곳에서 창작열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이청준, 전혜린, 김지하, 김민기등 이름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는 명사들이 이곳에서 글을 쓰고, 시간을 보냈다. 벽장에는 손때 묻은 LP판이 빼곡하고, 삐걱거리는 2층 나무 계단도 여전하다. 학림이 젊었을 때는 서울대 문리대가 혜화동에 있었고, 그 문리대 건물 앞으로 흐르는 개천과 다리(당시 학생들은 그 작은 개천을 ‘세느강’이라, 다리는 미라보 다리’로 불렀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로 통했다고. 시를 쓰고, 니체를 논하며, 빈궁해도 낭만이 가득했던 60년대의 추억이 지금도 학림다방 어느 구석 안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학림다방

1956년에 문을 연 대학로의 '학림다방'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옛날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와서 철학과 문학, 예술을 토론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빛바랜 LP판에서부터 뮤지션들의 흑백사진, 빈티지한 사진작가집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디테일들이 하나같이 학림다방 초창기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과거 학림과 같은 다방에서 제공하던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훨씬 맛있는 음료들을 판다. 가내 특제 블렌드가 있고, 레몬에이드나 다양한 전통차와 칵테일까지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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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커피한잔

'핸드메이드'가 이 가게의 특징이다. 커피의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기 위해 숯불을 이용한 로스터를 쓰는데 주인장이 직접 만든 자작품이다. 스페셜티 위주로 볶아내는 커피는 생두의 상태와 주인장의 감에 따라 로스팅의 강도가 바뀐다. 핸드드립 커피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카페라테 등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메뉴의 맛도 훌륭하다. 30년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인테리어 역시 주인이 한 달동안 직접 작업해 완성했다. 주말보다는 햇살 좋은 평일 오후에 방문해야 이 가게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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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미미 시스터즈

김시스터즈의 뒤를 잇는다

많은 독자가 미미 시스터즈는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코러스와 안무를 하던 두 신비의 여인들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1년 정식 데뷔 이후 한국적 색깔이 뚜렷한 복고음악을 하고 있는 인디 듀오이다. 미미 시스터즈는 50-60년대의 음악과 스타일에서 꾸준히 영감을 받으며 잠자리 선글라스를 고수하고 있다 . ‘큰 미미’는 홍대가 스윙댄스 열풍에 휩싸였을 때 화제의 댄스를 가르쳤고, ‘작은 미미’는 당시 그녀의 제자였으니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예스러웠다. 과거에서 끄집어낸 듯한 옷차림과 음악은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어떤 인터뷰를 해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미미 시스터즈는 이문세의 < 좋은 아침 >에서도 무표정에 선글라스를 고집했다가 의도치 않게 인순이 선배의 노여움을 산 적도 있다.

“처음엔 장기하 밴드와 ‘나를 받아줘’라는 노래 한 곡만 같이하기로 했었다. 그때 얘기한 콘셉트는 ‘상처받은 자매’였는데, 조금은 어둡지만 그래도 여성스러운 언니들이었다. 장기하의 음악 역시 복고 영향을 많이 받은 노래이다 보니, 함께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복고풍 스타일이 완성됐다. 우리 프로듀서인 하세가와 요헤이에게 옛날 한국 음악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일본사람인데도 웬만한 한국 뮤지션보다 한국 대중음악에 조예가 깊고, LP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50-60년대에는 ‘OO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여성 가수가 특히 많았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옛날 사진과 비디오를 찾아 돌려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그런 분들이 더 유명했으면 좋았을 텐데). 김시스터즈, 펄시스터즈, 바니걸즈, 리시스터즈, 숙자매, 김추자, 김정미 등 정말 많았다. 가장 좋아하는 시스터즈는 당연히 김시스터즈였다. 이 ‘시스터즈’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미미 시스터즈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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