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길

걷기 좋은 계절이다. 사색하기 좋고 달리기도 좋은 세 가지의 다른 길을 당신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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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의 10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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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산책
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산책
  가을이 되면 누구나 혼자서 긴 산책을 하게 마련이다. 귀에는 헤드폰을 쓰고 바스락거리는 갈색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 산책은 꼭 혼자서 즐겨야 하는, 그런 나들이는 아니다. 이 산책의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걸어가며 만난 여러 장소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 그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을 통해 그곳을 더 진하게 기억한다. 내가 언젠가 데이트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책길”이다.   이 산책의 전주곡은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있고,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무명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숨이 가빠오는 낙산공원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추억 속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 생각나기도 한다. 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재즈스토리는 기억해두자.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조명 아래서 값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마침내 서울 성곽길에 다다른다. 이곳은 1936년 조선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성벽으로, 북악산, 낙산, 남산과 인왕산 자락을 잇는데 그 총 길이는 18.6km에 이른다.    이 성벽 중 나는 낙산에 위치한 성곽을 가장 좋아한다. 성곽길을 오르다 지칠 때면 내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는 느낌으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초록색 종로 03번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왼쪽에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성곽 지점들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성곽에는 나무에 가려지고 구석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나는 이곳을 종종 ‘서울에서 첫 키스를 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부른다. 해가 질 무렵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공기도 맑을 뿐 아니라,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광경과도 다르다. 요즘처럼 청명한 가을이면 밤에 별을 볼 수도 있다. 서울에서 별을 보는 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니 더욱 특별하다. 경비원이 자리를 비울 때면 사람들은 가끔 성벽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초록색 병에 든 막걸리를 마시기도 한다. 혜화문에서 홍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지어진 성곽은 약 2.1km다. 밤 동안에는 조명이 이 성벽을 밝게 비춰준다. 성벽에는 중간중간 이름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는데, 이것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태조와 세종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어떤 시기에 성곽의 어느 부분을 지었는지 돌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에 지은 부분의 돌에는 건축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건축 날짜도 새겨놓았다. 겨울에 이곳으로 산책을 갈 계획이라면 옷을 꼭 따뜻하게 입고 가자. 눈과 얼음으로 덮인 성곽의 풍경은 추위를 뚫고 방문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성곽길에서 약간 샛길로 빠져 암문(성벽 위에 누각(樓閣) 없이 만들어놓은 문)을 통과해 나오면 장수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선 일층 건물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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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걷기 좋은 북한산 둘레길
가을에 걷기 좋은 북한산 둘레길
  남산 아래 살고 있는 나는 짬이 날 때마다 남산을 오른다. 한두 시간의 짧은 산책임에도 산에서 받는 위로와 즐거움이 적지 않다. 남산만 가도 이러니, 북한산이나 도봉산에서 받는 기운은 더 크고 좋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울 안에 있지만 여느 명산 못지않게 훌륭한 산이지 않은가. 하지만 800m가 넘는 북한산 백운대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다. 산은 좋아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가기에는 체력이 안 되고, 조용히 산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기 좋은 코스가 있다. 바로 북한산 둘레길이다. 나도 가볍게 두세 시간 정도를 걸으며 숲과 자연의 내음을 맡고 싶을 때, 서울 안에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을 때 간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에 나 있는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평평한 산책로다. 전체 길이(71.5km) 중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해 45.7km를 먼저 개통하고, 2011년에 나머지 구간을 개통했다. 나무길과 흙길, 숲길과 마을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둘레길은 코스도 21개나 된다.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메고 친구와 함께 맨 처음 걸은 길은 8코스의 구름 정원길. 우이령 코스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길로, 불광역(또는 연신내역)에서 시작할 수 있다. 총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난이도를 따지자면 중간 정도다. 무엇보다 숲 위로 설치된 다리가 인상적인데 이 다리 때문에 구름 정원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리 위에서는 은평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고, 밑에서 올려다보던 소나무들이 눈 아래에 울창하게 모여 있다. 구름 정원길이 시작되는 길의 왼편으로는 불광사라는 소담한 절도 나온다. 작은 앞마당이 정겹고 휴지통을 편지함으로 개조해 나무 사이에 걸어둔 모양새가 소박한 곳이다. 이 불광사 앞마당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숨찬 오르막을 지나면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와 억새길이 나타난다. 산 중턱에서 만나는 억새밭은 뜻밖의 풍광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멀리 북한산 봉우리들도 선명하게 보이고 그럴싸한 산 경치가 180도로 펼쳐진다. 둘레길을 두 번째로 찾은 시기는 단풍이 한창 들었다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초겨울이었다. 수유역에서 내려 우이령 계곡으로 들어가 교현리로 나오는 우이령 코스를 걸었는데,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반기던 울긋불긋한 단풍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금세 잊게 해준 우이령 계곡은 단풍이 다 져버린 시내와는 달리, 여전히 단풍을 안고 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우이령 코스는 둘레길 중 가장 길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해오다 2009년부터 탐방 예약제로 개방한 길이라 다른 코스보다 자연의 보존 상태가 좋다. 걷다 보면 다른 구간보다 숲과 나무가 깊고 그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이동 차고지 종점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오르막길이라 힘들지만 교현리로 내려가는 길은 군사도로로 사용하던 널찍한 비포장 도로라 걷기 편하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우리는 마치 낯선 시골동네에 떨궈진 기분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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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좋아할 자전거길, 잠실나루에서 남한산성까지
당신도 좋아할 자전거길, 잠실나루에서 남한산성까지
  서울의 라이더라면 한강을 가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그곳의 자전거길은 (군데군데 공사 중인 것을 제외하고) 꽤 잘 형성돼 있다. 힘든 오르막 없이 평탄하며, 도로의 폭이 넓어 라이더에게 안전하다. 게다가 이정표와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어 휴식이 반드시 필요한 라이더에겐 천국의 길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라이딩 코스는 꽤 있다. 먼저 언급한 한강종주자전거길(서울구간)을 동에서 서로 내달려 경인아라뱃길까지 도달하는 길은 시원한 강바람을 가로지르며 멋진 교각과 도심 속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주로 이제 막 라이딩을 시작하는 이들이 즐긴다. 한편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는 걸 가리켜 ‘힐-클라이밍’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 페달을 밟고 언덕을 오르는 것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 맛보는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보상이다. 그래서 서울의 라이더들은 남산을 오른 후 광화문을 지나, 남산보다 더 높은 북악스카이웨이 정상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일명 ‘남북업힐’이라 말하는 이 코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힐-클라이밍 코스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앞서 소개한 두 길도 좋을 수만은 없다. 한강으로 산책을 나온 가족단위 사람들, 그리고 한강 둔치를 달리는 러너까지 몰려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 북악은 한껏 몰린 라이더들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운전자들로 인해 길이 막힐 정도. 그렇다고 남산만 오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기분이라면? 서울의 한강 자전거길에서 출발해 남한산성까지 도달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어 가장 애용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곧게 뻗은 한강길을 따라 달릴 수 있고, 서울에서 벗어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라이더의 수가 줄어 쾌적하게 달릴 수 있다. 게다가 한강-미사리-팔당-도마치에 이르기까지 조용하게 흐르는 한강과 크고 작은 산들을 곁에 둘 수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하게 된다.   이 코스의 절정은 남한산성에 진입하며 시작된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언덕의 경사각이 커지며 더욱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만, 고요한 1차선 도로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다. 잠실 선착장에서 시작해 하남을 지나 남한산성에 오른 후 되돌아오는 코스는 다양한 형태의 라이딩을 즐길 수 있고, 동시에 가을의 멋진 풍경을 마주하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물론 이제 막 라이딩에 입문한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다. 잠실나루에서 출발해 남한산성을 거쳐 되돌아오기까지 약 58km. 평균속도를 약 20km에 맞춰 달려도 3시간 이상 소요된다. 또한 남한산성에 도달하는 구간 중 일반도로를 통과해야 하므로, 도로 위에서의 라이딩 경험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 막연히 서울을 벗어나고 싶고, 자연의 품이 그리울 때 타게 될 길이다. 자전거로 내달리며 힘들었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정상에서 마주하는 햇살과 산바람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글 이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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