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서울을 연상시키는 우사단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디스레트로라이프는 주인장이 오랜 시간 황학동과 종로 일대를 누비며 찾아낸 오래된 물건을 파는 가게다. 빈티지 시계나 영화 < 레옹 >을 떠올리게 하는, 알이 작은 안경테와 선글라스, 손때가 묻은 시집과 문학 서적을 주로 소개한다. 곳곳에 오르골과 포크, 나이프 등 카테고리를 분류할 수 있는 소소한 물건도 있다. “디스레트로라이프는 혼자서 구경해도 좋은 가게, 나만 알고 싶은 가게, 주인장이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는 그런 가게입니다.” 주인장이 가게에 붙여놓은 이 문구처럼, 할아버지의 창고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마음껏 안경을 써보거나 책을 뒤적거려도 괜찮다. 각진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덕분에 흥도 난다. 이곳을 혼자서 구경해도 좋지만, 추억을 나누는 공간이니 친구와 함께 방문하는 게 더 좋겠다. 90년대의 시계 브랜드인 카파 시계를 보고 혼자만 반가워하면 분명 아쉬울 거다.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언덕을 올라가면 파란 타일로 장식된 이슬람사원(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입구가 보인다. 이슬람사원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좁은 길. 이곳이 ‘우사단길’로 불리는 용산구 우사단로 10길이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한편, 2003년 뉴타운 재개발 예정 구역으로 묶인 뒤 재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져 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우사단길은 2014년, 이곳에 자리 잡은 젊은이들이 모여 이슬람사원 앞 계단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연 벼룩 시장 ‘계단장’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2-3년 전부터 우사단길에서 작업실 겸 가게를 운영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골목의 활성화를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그러나 골목이 활기를 띠는 것과 별개로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임대료 등의 문제로 올해 3월부터는 잠정적 폐지상태였고, 지난해 9월 마지막 계단장이 열렸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우사단길은 지금도 빠르게 변화 중이다. 오래된 가게들 사이사이 시멘트를 덧대거나 화려한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젊은이들이 취향과 감각으로 꾸민 꽃집과 카페, 가죽 공방, 빈티지 숍 등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소란스럽지 않은 지금이 우사단길을 가기 가장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