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함양까지 고속버스를 타면 약 3시간 20분이 걸린다. 열차는 다니지 않으니 다른 선택은 없다. 함양은 경상남도에 있지만 전라북도와도 맞닿아 있다. 함양에 간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이 친구 고향이 함양이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울을 떠나기 전, 함양에 대해 여행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함양에 있는 상림에 가고 싶었다. 상림은 1100년 전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곳이다. 지난해 아트와 음악 작업을 함께해온 장민승과 정재일은 이 최초의 인공림인 상림을 관찰하고 기록한 애플리케이션 ‘상림’을 내놨다. 늘 상림에서 ‘상림’을 듣고 싶었던 터라, 나중에 꼭 한번 함양에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열렬히 기차를 사랑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기차를 탈 때면 불에서 피어나는 꽃과 작은 새싹, 그리고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칠레의 테무코에는 그를 기리며 지은 국립철도박물관이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시가 수놓여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중부 내륙 순환 열차인 오트레인(O-train)을 타고 이동하는 다섯 시간 동안 차분히 생각에 잠겨 여행할 내 자신을 상상했다. 내 기차여행의 뮤즈였던 노르웨이 베르겐의 그 산악 열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열차는 정신없는 케이팝 리스트와 운행하는 내내 진행된 게임쇼, 그리고 그 쇼의 MC이자 승무원들로 인해 내 상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전주? 비빔밥 유명하죠” 서울살이 5년 차, 고향을 밝히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비빔밥 이야기를 한다. “전주 사람들은 비빔밥 잘 안 먹어요.” 전주 출신으로서 오히려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전주에 대해 말하는 게 망설여졌다. 먹어본 적 없는 문어꼬치, 새우만두 같은 음식이 한옥마을 맛집으로 등장한 때부터다. 한옥마을 메인 거리는 새로 생긴 음식점과 그 앞에 줄 선 관광객으로 항상 붐볐다. 몇 년 사이 인기 관광지가 된 전주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과 달랐다. 문어꼬치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그건 전주의 맛이 아니다. 전주를 다녀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주 출신인 내가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소개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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