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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통한 얻음, 어둠속의대화

한 해의 출발선 앞에 선 당신에게, 꼭 필요한 체험이다.

Dialogue in the dark(어둠속의 대화)

얼굴을 모르는 남녀가 암흑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확인하던 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지. 서울에도 어둠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물론 로맨틱한 만남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다. 북촌에 위치한 상설 전시 공간 어둠속의대화가 바로 그곳. 이 전시는 1988년 독일의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에 의해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실명을 하게 되고, 그것에 적응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박사가 깨달음을 얻고 작은 창고를 개조해 전시를 하게 된 것. 현재는 전 세계 160여 지역에서 9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글로벌 전시다. 관람자들은 핸드폰도, 전자시계도 들고 들어갈 수 없는 전시장에서 100분 동안 로드 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전시를 체험한다. 지팡이 하나와 더듬을 수 있는 벽, 그리고 목소리에 의존해 테마별로 마련된 공간으로 이동한다. 단순히 시각 장애를 체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감각적 경험이 가능하도록 바람, 물, 온도까지 신경 써 세트를 완성했다. 완전히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8세 이상부터 70세 이하인 사람만 관람이 가능하며, 폐쇄 공포증 같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관람 전 상담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소규모 그룹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사전 예매는 필수. 단체 관람의 경우 최대 8명까지 신청이 가능(유선 예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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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대화를 다녀와서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더 세게 눈을 떠봐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전시를 체험하는 사람 여섯 명 중 다섯은 서로 잘 알고 있는 단체 관람객(선생님 모임)이었다. 에디터 혼자 모르는 이들과 뭘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안전이 검증된 체험 전시이지만 본능적으로 엄습해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어둠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6명은 3명씩 나눠 머리를 맞대고 팀명을 정한다. 우리 팀은 ‘동동주’.  (체험하는 동안 나는 ‘동동주’팀의 ‘주’님으로 불렸다.)  “제 목소리 들리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왼쪽 벽을 짚고 일곱 발자국만 걸어볼게요.”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에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모두가 한 발짝씩 나아갔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어색한 미소로 통성명을 한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앞 사람의 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등에 머리를 박거나, 발을 밟게 되는 일도 많았지만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전시장은 다양한 테마의 공간(숲, 바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방적인 설명을 듣거나 섣부른 질문을 던지는 대신 점점 감각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손끝에 나뭇잎이 만져지면 숲에 왔다는 걸 알아차렸고, 얼굴에 부는 바람을 느끼며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깜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믿을 구석은 로드 마스터뿐이었고, 그녀의 말에 따라 움직이니 사고가 날 일은 없었다. 다양한 코스 중 가장 기대되는 건 카페 체험이었다. ‘다크 카페’라 불리는 그곳에서는 이름 모를 음료를 마시며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온 음료라 여긴 음료는 레모네이드였고 쪽지에는 꼬불거리는 글자의 형체만이 남아 있었다.) 빛이 없으니 흐르는 시간에도 둔감해졌는지  100분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홀로 제주도의 밤 거리를 걷다가 칠흑 같은 어둠에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떠올랐다. 해가 지면 깜깜해지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순리인데도 도시의 불빛에 익숙해진 에디터는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둠속의대화> 는 그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낀 빛과 시각이 사라진 순간, 잊고 있던 존재들이 코와 귀와 살갗으로 느껴진다. 보이는 것 때문에 무뎌진 감각들이 비로소 또렷하게 살아난 느낌이었다. 그게 레모네이드의 맛이든, 목소리의 작은 떨림이든. 관람 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도 들겠지만, 보이는 것에 가려져 있던 어둠의 이면들, 혹은 다른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관람 후 번진 마스카라는 여전히 창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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