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한가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여성들만 명절 스트레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LGBT 친구들도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는 날이다. 바람 잘 날 없는 LGBT 추석 보내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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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드릴 수 없는 효자

추석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보고 싶었던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이겠지만,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어떤 동성애자들에게는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고통의 한 주다. 본인은 바다가 보이는 남쪽 도시에서 다수의 형제중 막내로 태어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어느 형제들보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도 곧바로 했다(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효자 없다!). 모든 형제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어 70대의 노부모가 서울로 오시는데,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니 노모의 결혼 요구가 제안이 아닌 협박 수준. 소리 질렀다 울었다 화냈다 집어 던지기를 반복하시는 칠십 노모와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최근에는 연을 끊자는 초강수를 두기까지 하셨다. 그 어느 아들보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위하는 막내지만 소원을 들어드릴 수 없는 이유를 알릴 수도 없고…. 마음만 숯처럼 타 들어간다. - 감각 있고 세련된 효자 바이어.

아직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친구들과 가족처럼…

30대 후반에 결혼했는데, 그때야 스스로 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드러내놓고 사는 것이 훨씬 당당할 거라는 생각에 아내에게 먼저 고백했고, 신앙의 힘으로 고쳐보자는 설득에 오히려 게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고쳐지는 병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결국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혼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가족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가족들은 병원을 가자, 기도원을 가보자 난리였지만, 내가 게이가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더군다나 비정상적인 질병도 아니며 선택의 문제도 아니라는 지난한 설득의 과정이 있었다. 선택의 문제라면 어느 누가 이처럼 힘든 길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부모님도 이해를 하게 되었고 같이 인사를 드리러 간 파트너를 부모님은 또 하나의 아들로 인정해주셨다. 명절이라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인사드리러 가서 하루 정도 같이 지내고 오는데 가급적 잠은 안 자고 오는 편이다. 아무리 인정받은 사이라 하더라도 남자들 둘이 부부처럼 한 방에 자는 건 아직 서로 불편하다.— Sci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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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여친과 커플링 끼고 큰집 가다

엄마와 오빠는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안다. 엄마는 추석 때 여자친구랑 같이 올 거냐고 물어봐주고, 오빠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미국인이라서 명절 때 만나러 갈 가족이 한국에 없으니, 내가 데리고 간다. 커플링도 끼고! 한 번은 친척들이 다 모여 밥을 먹는데, 친척 중 한 명이 왜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냐고 공격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둘이 커플링 꼈냐고, 안 그래도 둘이 잘 지내서 반지 하나 해주려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너네 앞으로도 반지 끼고 오라고, 결혼한 사촌 중에 너네만큼 잘 지내는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엄마는 더 많이 나를 믿어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큰집에 가기 싫어도, 엄마 때문에 간다. 자식들이 뾰족한 이유 없이 안 오면 또 안 좋은 소리가 나오니까. 대신 여자친구한테는 항상 물어본다. “같이 갈래?” 그럼 이렇게 말한다. 너 혼자 가면 눈치 보이니까, 같이 가자.” 아,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의외로 남자 친척보다 아기를 낳은 여자 친척이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정해진 틀대로 행복의 기준을 정하고 사는 것 같다. 행복은 모두 각자에게 다른 것인데 말이다. - 익명

보수적인 아빠의 깊은 침묵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로서 추석이라는 대명절은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가까이하고픈 양날의 칼이다. 모든 가족이 나의 성향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 쪽은 나의 길을 존중과 응원으로 보듬어주었지만, 아빠 쪽은 새 가정을 가진 뒤로 더 복잡한 가족 관계가 생겨 더욱 커밍아웃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특히 아빠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라 사회적 눈과 귀를 많이 의식하시는 편이다. 나의 성 정체성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신 후에는 더욱 무겁게 침묵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 같은 가족 모임은 늘 맞춰지지 않는 퍼즐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트랜스젠더 특성상 외형적인 면에서부터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니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뒷말 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리 친척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과 시선에 맞서기에는 솔직히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방전되는 기분이다.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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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발 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며

나는 살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다(정말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단연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던 순간일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처럼 모질고 독한 나와는 다르게 마음 여린 내 부모는 성적 취향이 다른 막내 아들을 받아들이셨다. 물론 여기까지는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부모가 게이 자식을 받아들였다 해서 우리 집 명절이 '모던 패밀리' 같은 미국 시트콤처럼 화기애애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오산이다. 커밍아웃한 지도 어언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저가 해외 항공권부터 검색한다. 타이밍을 놓쳐 추석날, 온 가족이라도 모인다 치면 그것은 대재앙.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은 없는 거니?”, “너도 ○○일보에 나왔던 그 문란한 동성애자처럼 사는 거는 아니지?” 등등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일에까지 날을 뾰족하게 세운 질문 공세에 난타당한다 (마음이 여린 부모랬지 착하다 한 적 없다!). 서울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가끔 잔혹하다. 명절마다 죄인처럼 숨어야 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조선 민족은 왜 이렇게 남의 결혼, 연애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 마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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