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좋아요
저장하세요

Seoul Eye: 미친년으로 살어리랏다

박영숙 작가의 10년 전 프로젝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Park Youngsook,2002
Imprisoned Spirits, Wandering Spirit, c-print, 120x120cm

“여성들은 스스로를 억압해왔다 자신들의 삶을 그 누구에게 빼앗긴 줄도 모르면서. 윤리, 제도, 문화, 사회가 그녀들의 삶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자아가 없었다. 그녀들은 꼭두각시였다. 어머니, 누이, 착한 딸, 예쁜 손녀, 그리고 마음 너그러운 부인으로 불리면서… (중략)” -박영숙 작가노트, <미친년 프로젝트>에 대하여.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작가 박영숙의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이자 사진작가인 그녀는 약 7년간 한국의 ‘미친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분홍색 베개를 꼭 껴안고 흐트러진 차림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 입고 있는 셔츠와 바지가 흠뻑 젖은 채로 화장실에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성,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먼발치를 바라보는 여성. 초점 잃은 눈빛을 한 이들은 누구일까? 단순히 정신줄을 놓아버린 여자일까?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미친년’이 맞다. 다만 “남성 지배적인 문화를 참고 참다  마침내 미쳐버린 여성 혹은 남성 지배 문화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던, 그래서 당대 남성들에게 ‘미친년’ 소리를 들었을, 하지만 오늘날 여성에게 칭송받아 마땅한 그런 ‘미친’ 여성이다.”

작가가 성장하는 동안 가정 환경에서 어떤 억압이나 차별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달랐다. 대학 졸업 후 사진 기자로 활동하던 잡지사에서 받은 황당한 통보가 그 시작이었다. ‘한 회사의 가장인 부장님과 표지 사진을 두고 다투려면 미스 박이 자진 퇴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박영숙 작가는 1975년 UN에서 정한 첫 ‘여성의 해’ 기념 사진전을 위한 개인전을 열었고, 여성단체연합의 각종 세미나와 페미니즘적 글 쓰기에 참여하는 등 한국에 최초로 유입되던 ‘페미니즘’의 개념을 가장 선두에서 흡수했다. 예술가로서, 여자로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각했다. 이런 새로운 경험과 함께 1980 년대부터는 단순히 ‘여성 작가’가 아닌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구성하기 위해 과거 여성 차별의 사례를 더욱 깊이 연구했고,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끊임없이 토론을 벌이며 작품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가부장적인 성 역할 구조에 저항하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여성을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면서 40여 년 가까이 한국 페미니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미친년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리즈가 발표된 것은 2005년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강산은 변했을지 몰라도 ‘여성 혐오’ 같은 단어는 아직도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최근 여성을 타깃으로 한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도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갤러리의 관장에서 7년 만에 재기한 작가 박영숙의 회고전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Advertising

댓글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