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티 사말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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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티 사말라티 <Here Far Away-여기 그리고 저 멀리>

북구의 방랑자가 채취한 찬란한 은빛 세계

서울에 눈발이 꽤 날리던 날이었다. 핀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펜티 사말라티(Pentti Sammallahti)의 <Here Far Away-여기 그리고 저 멀리> 전이 공식적으로 열리기 전 공근혜 갤러리를 방문하기엔 썩 어울리는 날씨로 다가왔다. 아마도 에디터가 전시를 접한 첫 외부인인 듯싶었다. 지난 2년간 이번 전시를 성사시키기 위해 애를 쓴 공근혜 관장도 무언의 끄덕임을 보였다. 조명 장치를 다시 매만지는 틈에 운 좋게 만난 일군의 사진들은 눈과 구름과 빛과 어둠을 각자 제 방식대로 품고 있었다. 펜티 사말라티는 스스로를 장인(craftman)이라고 부른단다. 처음 사진을 접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필름을 암실에서 인화하는 은염(Gellation Silver Printing) 기법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어시스턴트 한 명 없이 자신의 눈과 감각을 믿고 손으로 뽑아내는 그의 흑백 사진은 사이즈가 큰 것이 가로로 두 뼘, 작은 것은 엽서와 크기가 비슷하다. 어쩔 땐 새끼손톱 조각보다 조그마한 피사체는 눈과 사진 사이의 공간을 극도로 좁히는데, 놀랍게도 제 형태와 명암을 온전히 갖춘 까닭에 그 치밀함과 세밀함에 대한 경의와 더불어 숨이 멎는 경탄마저 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최근 2014년까지 총 60점의 다양한 작업을 회고전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모두 고국 핀란드부터 가깝게는 러시아, 영국과 이탈리아, 불가리아 등의 유럽, 멀게는 인도와 일본, 네팔까지 세계를 방랑하며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순간을 채취하는 방랑자의 태도가 깊게 담겨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전시의 1/3에 육박하는 대규모 연작인 ‘러시안 웨이(The Russian way)’다. 러시안 웨이에는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빛나는 눈의 환상과 흔들리는 바람의 잔상, 얼어버린 나무와 땅, 그 위를 뛰노는 어린아이와 개가 움직임과 멈춤을 반복하며 사각형 인화지 안에서 숨쉰다. 마치 수은이 지나간 순간을 잡아챈 듯 빛나는 은빛 포말이 기화한 흔적들은 사진 곳곳에 아스라이 남아 있다. 모든 훌륭한 예술이 늘 그렇듯 그의 사진은 모니터 디스플레이가 표현하지 못하는 진본성의 아우라가 남다르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길 권한다. 마치 동명의 전시 제목처럼 여기, 그리고 저 멀리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에 서 있는 듯한 북구의 고요함이 아득한 추억처럼 순수하게 빛난다. 비록 한국에서의 첫 전시라지만 아마 앞으로 우리가 펜티 사말라티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잦아질 것 같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우리 삶은 경탄만 하기에도 그리 길지 않으니까 말이다. 

글 전종현(디자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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