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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사서 먹는다면?

김치를 향한 우리의 두 얼굴.

김치는 한국인에게 어떤 자존심이나 민족적 ‘촉수’ 같은 것이다. 철강 제품 10억 달러 수출보다 김치 천만 달러 수출 뉴스가 더 가치 있는 기사로 취급된다. 김치가 유명해졌지만, 진짜 김치가 소개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탤리언 카르보나라 스파게티에 크림소스를 흥건하게 부어주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그걸 먹고는 음, 이건 면을 넣은 수프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의 음식 담당 기자가 언젠가 김치 담그는 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자사 사이트에 올렸다. 나는 몹시 흥미롭게 보았다(기자가 미녀이기도 했다). 젓갈 대신 앤초비를 넣는 애교에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정말 김치 같았다. 맛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다음 멘트가 ‘음 아직은’ 하고 판단을 유보하게 만들었다. “이제 냉장고에 넣으시고요(예쁜 피클병에 담았다), 내일부터 먹을 수 있습니다.”

그 기자는, 김치는 ‘숙성’된다는 걸 깜빡한 것 같다. 막 담근 무김치는 정말이지 먹기 힘들다. 안 익은 무는 아리고 뻣뻣하며, 풀 냄새가 난다. 물론 다 익으면 마법처럼 맛있어진다. 일본에 간 유학생의 경험담도 흥미롭다. 그는 김치가 먹고 싶으면 마트나 편의점을 여러 군데 순회한다. 한두 군데는 꼭 김치를 할인해 팔았는데, 이유는 ‘김치가 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장을 뜯어서 먹어보면 의외로 아주 맛있는 김치였다. 그러니까 일본인에게는 김치가 ‘익는다’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익는다와 상한다는 아주 먼 거리가 있지만, 얼핏 보면 비슷하다. 발효와 부패는 종이 한 장 차이니까. 한국인에게 김치는 유통 기한이 없다(물론 판매용 김치는 그렇지 않다). 오직 엄마만이 김치의 유통 기한을 정할 수 있다. 시어서 그냥 먹기 힘들면, 찌개를 끓이고 볶고 지진다. 한국의 엄마들은 지나치게 숙성된 김치 처리하는 방법을 100가지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할머니들은 500가지를 알고 있다.

전라도에서 식탁에 10가지 내외의 반찬을 놓는다면 그중 김치는 서너 가지나 된다. 김치만으로 꾸민 만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선이나 해물이 통째로 들어가서 그것으로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으며, 김치의 주재료인 채소도 배추는 기본이고 갓, 파, 무에 들에서 나는 온갖 채소를 다 쓸 수 있다. 김치는 그러므로, 반찬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전 요리가 되곤 한다.

한국인은 김치를 좋아하고 민족적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이왕이면 백인이) 김치 없이 식사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장 TV 다큐멘터리 제작팀이나 연예 오락팀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갈 것이다. 된장찌개를 매일 먹는다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겠지만. 무엇보다 김치다. 김치는 곧 한국인과 동일시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김치를 천시한다. 식당에서 김치를 돈 받고 팔면 당장 주인의 멱살을 잡으려 들 것이다. 나도 김치를 돈 받고 판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식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명동의 딘타이펑도 김치를 5500원 받고 팔지만, 역시 큰 문제가 없다. 중식당이니까. 한식당에서는 김치를 돈 받고 팔기가 힘들다. 김치는 자존심이라고 하면서 정작 공짜여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저질 김치가 난무한다. 김치는 제조 비용이 많이 든다. 고가의 양념을 쓰기 때문이다. 그걸 공짜로 주자니 저질 논란이 빚어진다. 한식당에서 달걀말이나 제육볶음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김치는 무한 리필이다. 김치 추가에 돈 받는다는 건, 적어도 식당이 문을 닫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 한국인의 상징 같은 김치의 특별한 두 얼굴인 것이다.

어찌 되었든 김치는 아주 맛있다. 그러나 점점 김치를 먹지 않거나 거의 손대지 않는 한국인이 늘어난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찬일(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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