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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WE THINK THIS MONTH: 우리는 어쩌다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나

작성:
Dong Mi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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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프랑스 칸으로 영화제 취재를 갔을 때였다. 주최 (칸 출품작의 국내 배급사) 측에서 준비한 숙소에서 주인이 놓아둔 엽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 집은 수십 년 째 살아온 가족의 온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유럽의 가정집이었다. 식탁 위의 엽서에는 ‘해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열 달을 일한 돈으로 부부의 부모와 함께 두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으며, 이 집에서 최대한 즐겁고 행복하게 영화축제를 즐겨주면 좋겠다’는 주인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두 달씩이나?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부러움에 앞서 지구 반 바퀴 너머의 이 집 상황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세계로 다가왔다. 우리는 아침부터 현장 취재를 나가, 시차 때문에 밤늦게까지 기사 송고에 매달렸다가 잠에 빠져들곤 했다. 열흘을 보내고 귀국하는 날 아침에야 발코니를 내려가면 곧바로 칸 해변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일년에 두 달씩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 첫째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지우길 반복하느라 휴가의 3분의 1을 날려버릴지 모른다. 둘째, 휴가를 보내면서도 회사일을 생각하느라 온전한 휴가를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셋째, 휴가가 끝나갈 즈음 회사와 접촉하거나 접촉을 시도하며 복귀 워밍업을 할 것이다. 일과 휴가를 선명하게 구분 짓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에게 휴가는 ‘출근하지 않는 상태’ 이상이거나 이하일 때가 많다.

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매사에 전력질주하도록 세팅됐고, 그런 세팅에 의문을  갖는 건 사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리셋하지 않았다. 익스피디아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이 연평균 15일 이상인 연차 휴가 중 실제로 사용한 일수는 6일에 불과했다. 세계 각국의 직장인 9273명을 대상으로 연차 유급 휴가 일수와 소화 일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 직장인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연차 휴가 소화 일수가 가장 적었다. 한국인 응답자의 67%는 유급 휴가를 모두 쓰는 것에 ‘죄의식’ 까지 느낀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를 상사의 이해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 브라질의 직장인 대부분은 30일에 이르는 연차 유급 휴가를 끝까지 다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어진 휴가의 절반도 쓰지 못하는 것은, 일중독 증후군에 걸린 우리 스스로 때문이기도 하지만, 휴가를 온전히 쓸 수 없게끔 만들어놓은 사회 혹은 회사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휴가는 최고 성수기인 여름철에만 쓸 수 있고, 비싼 바가지 요금과 휴가철 교통지옥을 감내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어디든 다녀와야 한다. 국내는 물론 국외로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초성수기 기간을 살짝 피해서 휴가를 갈 수 있다면 휴가 비용도 훨씬 줄일 수 있지만, 상사에게 말조차 꺼낼 수 없다. 아마도 “제 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기에.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에게는 여름휴가 일정을 제출하라는 상사의 지시가 내려올지 모른다. 상사가 고른 날짜를 피해 후배와 조율해가며 적당히 날짜를 적어 넣겠지.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야 어디서 뭘 할지 고민하고, 부랴부랴 비행기표도 알아볼 것이다. 가장 하고 싶은 건 잠 아니면 짧은 여행, 그것도 아니면 밀린 TV 몰아 보기? 뻑적지근한 계획은 애초에 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자고, TV 를 보고 혹은 가족과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회사를 잊을 수만 있다면 이번 휴가는 성공일 것이다.  건투를 빈다. ■ 안은영(작가, 프리랜스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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