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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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화려한 색감을 즐기는 특이한 작가인 줄로만 알았다. 이번 특별전을 보기 전까지는. 전시를 보지 않았다면 영영 이 작가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장장 두 시간 반 동안 찬찬히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정말 오랜만에 ‘볼 만한 전시였다’가 아닌 ‘이 전시를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가 특별히 조명하는 ‘환경에 대한 관심’은 훈데르트바서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어쩌면 당연하게 언급되는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훈데르트바서가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전시 전개 방식 역시 신선함을 주기 위해 제법 신경을 쓴 테가 난다.

처음 전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쨍한 보랏빛으로 물든 전시장 벽면의 색만큼이나 생경하다. 전시장 앞에 쓰여있는 전시 주제 혹은 기획 의도에 대한 월 텍스트(wall text)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다소 짧은 전시 도입부부터 몰아치는 총천연색의 화면에 ‘뭐 이렇게나 급작스러운 전개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텍스트에 대한 부담감 없이 가볍게 볼 수 있겠다는 안도감도 든다.

색채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실제로 마주한 작품의 색 조합은 무척 좋았다. 판화의 경우 어느 부분에 어떤 색을 썼는지, 몇 번째 에디션이며 어느 부분이 수정되었는지를 화면 바깥 여백에 빼곡히 기록하여 정보를 읽기만 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림 아래 찍힌 작가의 인장이다. 음각으로 찍힌 풍화(豊和), 백수(百水)는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을 한자 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물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서양식 석판화와 동양식 서명이 꽤나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또 한자 풀이는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다운지 작가의 지향점, 어떤 삶의 가치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시장 안쪽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작가의 친환경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압도적인 크기의 건축 모델이나 판화에서도 충분히 느껴지지만, 의외로 전시장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소규모 작품들에서 이러한 애정이 담뿍 묻어난다. <초원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 속 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눈은 풀밭에도 숨쉬는 무언가가 있음을 조용히 말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본 누군가가 환경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작가는 무척 뿌듯하겠지. 작가 스스로도 이런 희망을 품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마치 동화 책 속 한 줄을 옮겨다 놓은 듯, 하나같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작품 제목은 전시 관람을 더욱 즐겁게 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작가가 괴팍하리만치 강하게 자연 보호를 외치기도 하는데, 알록달록한 색감과 서정적인 제목 덕분에, 어쩐지 이러한 작가의 괴팍함(또는 시니컬함)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에게 손님일 뿐이니 그를 존중하라’는 작가의 꾸짖음을 마음에 담고 전시장을 나서는 길에 마주친 나무, 풀들이 낯설었다. 한 그루 한 그루 붙잡고 인사를 건네야 할 것만 같았다. 전시를 보았다기 보다는 얼핏 사람보다 자연을 더 좋아하는, 무지갯빛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귀여운 할아버지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온 기분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 고맙다. 글 한지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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