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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0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즐길 줄 알았던 ‘키드’들의 시대. 동네 비디오 가게, 동네 서점, 동네 음반 가게, 모든 게 동네에 있었던 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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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비디오 키드, 옥인상영관

비디오테이프가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물고 집에 돌아오던 여름을 기억한다. 집집마다 VCR이 보급되고 동네에는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90년대는 비디오의 시대고 영화의 시대다. 1995년에 "씨네21" 과 "키노"가 창간했고, 이듬해에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PC통신 동호회와 소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영화를 돌려보고 동네 비디오 가게 주인 아저씨와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던 시절이다. 당시 어디든 있던 비디오 가게 으뜸과 버금, 영화마을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대신 비디오를 추억할 수 있는 곳으로 옥인상영관이 있다. 동갑내기 친구 다섯이 의기투합해 만든 독립영화 전용 공간이다. 마당이 있는 이층 양옥집에 소규모 상영관을 만들었다. 관심사는 상영관이 아닌 내부에 있는 비디오방에 더 쏠린다. 1층 주방 식탁이 놓여 있던 장소에 텔레비전 2개와 흰색 의자 2개를 두고, (차마 비디오를 가져가지는 못한) 결혼한 친구 2명의 비디오 컬렉션을 쌓아두었다. 비디오방 이용료는 무료지만, 주의할 사항은 있다. 본 영화는 다시 잘 감아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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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신촌 대학가 그대로, 다모토리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무대는 신촌이다. 서울로 유학 온 94학번 학생들이 신촌의 하숙집에 모여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연대와 이대, 서강대 등 젊은 대학생들이 모여 문화를 즐기던 거리. 신촌 시계탑 앞에서 모두 약속을 잡던 시대. 90년대 대학가를 이야기한다면, 역시 신촌이다. 1987년에 문을 연 다모토리는 90학번들과 함께한 신촌의 터줏대감 같은 술집이다. 현재는 6개의 매장이 있을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90년대를 느끼려면 다모토리1(문을 연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에 가야 한다. 나무로 된 문을 열면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내부가 반긴다. 종이에 적어 노래를 신청하면 민중가요부터 90년대 가요까지 틀어준다.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합창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다. 주변 대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은 추억을 곱씹고, 재학생들은 교수님과 마주칠까 가지 않는 곳. 다모토리에서 응답하라 90년대를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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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가수 기린

요즘 기린의 음악방식 (feat. 90년대)

5대5 머리에 헤어밴드, 커다란 와펜을 붙인 가죽잠바(점퍼가 아니라 잠바다), 90년대를 풍미한 만화책 "힙합"에서 금방 빠져나온 듯한 청년이 있다. 2011년에 발매된 기린의 1집 앨범 수록곡 ‘지겨워’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뮤지션 ‘기린’이다. 사실 진짜 1990년대에 활동하던,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인 줄 알았다. 그 시대에 유행하던 비트에, 엉성한 포즈와 (지금 보면 당연히) 촌스러운 스타일까지. 이 뮤직비디오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 이 글을 읽기 전, 유튜브에 접속해 그의 뮤직비디오를 한 편 보라). 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차용도, 어설픈 흉내 내기도 아니다. 90년대 무드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제대로 만드는 기린의 태도는 진지함 그 자체다.

“서울에서 뉴 잭 스윙 음악을 하고 그림도 그린다. 대전이 고향이라 90년대 서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뉴스에서 본 서울의 모습이 기억날 뿐이다. 내가 하는 뉴 잭 스윙은 갑자기 나타난 음악 장르가 아니고 조금씩 변형되며 생긴 음악인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인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도 형이나 듀스가 그걸 가요로 풀어냈고, 아마 당시 유명한 뮤지션들 모두 한 번은 뉴 잭 스윙 음악을 했을 거다. 학창시절 현도 형의 팬이었고, 지누션 1집 같은 90년대 힙합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도 좋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는 그런 과거의 무드를 적극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1집 같은 경우는 무드를 활용하면서도 옛날 소스를 쓰지는 않았다. 다들 쓰는 소스를 똑같이 썼는데,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까 사람들이 착각을 한 것 같다. 나에게 이런 소스를 어디에서 구했는지 많이 물어봤다. 요즘에는 그 시대의 분위기나 소스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음악을 어떻게 하면 좋게 만들까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요즘 것도 있지만 과거의 것이 더 강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과거의 무드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오늘 입은 것도 그냥 요새 맨날 입고 다니는 옷이다. 계속 변화는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작업을 할 거다.”

90년대의 키워드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아이돌의 시초. 1996년 1월, 돌연 은퇴를 선언한 기자회견은 각 방송사의 9시 뉴스를 장식했다.

삐삐

삐삐

허리에 찬 모토로라 탱크를 꺼내 보는 것이 간지였던 시대다. 고급 카페에서는 호출하고 바로 통화할 수 있게 테이블마다 전화기를 두었다.

PC통신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모뎀으로 연결한 PC통신이 있었다. 전화비는 수십만원이 나오고 속도는 스마트폰보다 느렸지만 열매는 더 달콤했다.

X세대

X세대

당시에는 세대에 대한 담론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신세대라는 말 대신 X세대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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