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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유랑기

1970년과 2016년이 공존하는 매력 넘치는 동네 을지로.

기름때 묻은 낡은 공장과 여전히 구석에서 포르노 테이프를 팔 것 같은 세운상가, 그리고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가게들까지. 70-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을지로는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전성기 때는 이곳에서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농담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경제의 중심이 강남으로 넘어가며 지금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에게조차 낯선 곳이 되었다. 이런 을지로가 최근 들어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의 작업실을 찾아 도심 속 유목 생활을 하던 예술가들이 낡은 건물 구석진 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힙스터들은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바, 레코드 숍의 문을 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이곳에서 서민을 위해 장사를 하던 오래된 식당들이 매스컴을 통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1970년과 2016년이 공존하는 매력 넘치는 동네 을지로.

커피한약방

정말 이 좁디좁은 골목길에 커피숍이 있다고? 을지로의 허름한 빌딩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이곳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다방을 모티프로 꾸민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영화에서 보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법한 클래식한 분위기다.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무 바닥을 비롯해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자개 장식의 카운터 그리고 가스불로 로스팅하는 수동 로스터까지! 마치 타임슬립한 기분이 든다. 한약을 달여내듯 정성스럽게 손으로 내리는 진한 맛의 필터 커피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이니 꼭 마셔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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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수선화

우선 이곳은 ‘호텔’이 아니다. 차와 맥주, 와인 등을 파는 카페인 동시에 세 명의 디자이너 이경연, 이나나, 원혜림 씨가 작업실을 겸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의 전시와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익선동 ‘식물’의 디렉터 루이스 박이 이곳을 꾸몄는데 모던하고 서구적인 이미지의 호텔에 한양의 중심이었던 을지로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수선화’를 붙여 이름 지었다. 이 상반된 두 단어가 만나 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듯 공간에도 동서양의 조화가 잘 묻어난다. 꽃무늬 갓을 씌운 조명, 동양화풍 꽃 그림, 자개 테이블 등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에 카메라 셔터를 자꾸만 누르게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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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집

과거로 돌아간 듯 허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곳은 1969년 문을 열어 2대째 40년 이상을 지켜온 전통 있는 고깃집이다. 본래 용접이나 공구를 깎던 주변 공장의 작업자들이 일과를 마친 후 드럼통을 끼고 앉아 투박하게 썬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으로 하루의 피곤을 풀던 곳이었으나 최근엔 방송과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면서 양복을 갖춰 입은 주변의 직장인이나 외지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암소등심 단일 메뉴만 판매하는데 가격은 1인분(180g)에 3만2000원. 맛은 나쁘지 않지만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에 고기도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 집이다. 불편한 점도 많고 서비스는 기대도 해서는 안 되는 곳이지만 분위기만큼은 서울의 그 어느 고깃집보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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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녹두

전주 출신의 노부부가 1971년에 문을 열었다. 녹두전을 비롯하여 고추전, 동그랑땡 등 13가지 종류의 전을 내놓는다. 우선 녹두전의 경우 고기, 해물 그리고 굴을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는데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점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는 고추전.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파를 얹은 후 청양고추와 돼지고기를 듬뿍 올리고, 그 위에 계란을 톡 깨서 올려 지져낸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식감과 풍미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고기를 아낌없이 넣고 지져낸 동그랑땡도 이곳의 대표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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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호프

호프집 10여 곳이 모여 있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저녁이 되면 야외 테이블까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리는 서울의 명소다. 특히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선호프는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라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기 때문. 자리를 잡고 앉으면 주문을 하지 않아도 생맥주와 노가리가 사람 수대로 나온다. 노가리는 단돈 1000원. 둘이서 앉아 3000원짜리 생맥주 두 잔과 노가리를 시키면 8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 나온다. 참고로 80년대 초엔 500cc 생맥주 한 잔을 380원, 노가리는 100원에 판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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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집

이보다 더 푸짐할 수 없다! 감잣국이라 불리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단돈 7000원이지만 뚝배기가 넘칠 정도로 돼지뼈와 감자를 담아 내놓는다. 흔히 알고 있는 감자탕이지만, 고깃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살이 알차게 붙어 있고 감자도 큼직하다. 거기에 한 접시 가득 담아주는 수육과 순대를 곁들이다 보면 소주병은 쉴 새 없이 쌓여간다. 한두 잔 술잔을 채워가다 어느 정도 얼큰하게 취했다면 순댓국을 한 그릇 시켜 맛보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순대보단 머리고기와 곱창 위주로 듬뿍 들어 있는데 깔끔한 국물 맛에 속이 확 풀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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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크레코즈

을지로 대부분의 가게들이 그러하듯 후미진 골목에 숨어 있는 이곳은 전 세계 독립 음반사의 언더그라운드 댄스음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유일무이한 곳. LP와 카세트테이프 등을 판매한다. 3명의 DJ가 음반을 셀렉트하는데 하우스, 테크노, 디스코, 뉴웨이브 등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컬렉션이 돋보인다. 아쉽게도 이곳은 주말에만 문을 열지만 이들의 온라인 스토어(cliquerec.com)에서 앨범을 구입할 수 있고 사운드 클라우드(soundcloud.com/cliquerecordseoul) 계정에 들어가면 이들이 제공하는 힙한 음악도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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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피스

담백한 여유가 묻어나는 이곳은 카페를 겸한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이너인 두 친구가 모여 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이라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고, 화려한 인테리어 요소도 없지만 몽환적인 음악을 들으며 창밖으로 훈련원 공원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차분해진다. 다들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있길래 한 잔 시켜서 마셔봤더니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크림이 맛있어 바닥까지 싹싹 긁어 마셨다. 옥상에 있는 작은 공간에선 신인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으니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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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물

“팔기 싫은 것 팝니다. 우리는 귀엽습니다.” 어릴 적 용돈을 받아 달려가던 문방구처럼 재미있는 물건으로 가득한 이곳은 아티스트, 디자이너, 에디터 등 다섯 명의 친구가 모여 문을 연 곳으로 그들이 아끼던 비디오테이프, 완구, 잡지, LP 판 심지어 리즈 시절의 김희선 사진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팔고 있다. 너무 많은 제품이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영업한다. 5000원 이상 구입하면 카드 결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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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

낡고 흉흉한 분위기로 한때는 헐릴 위기에 처했던 세운상가 한구석에 문을 연 서점 200/20. 대림상가와 세운상가에 먼저 문을 연 800/40, 300/20에서 영감을 받아 문을 연 곳으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라 200에 20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독립출판물, 인문학 서적, 소설책 등으로 책장을 채웠는데 매년 하나의 주제로 컬렉팅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인문학자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어초문답’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이들의 페이스북(facebook.com/20020page)에서 찾아볼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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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에서 만난 사람들

염승일

염승일

“을지로에는 작은 규모의 공장과 인테리어, 조명, 공구상가 등이 인접해 있어요. 갖가지 재료를 바로 접할 수 있죠. 세계에서 예술가들이 작업하기에 제일 좋은 곳이에요. 사실 인근 일대가 공장지대이다 보니, 시끄럽고 건물도 노후한 편이라 사무실로 사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월세가 비싸지 않죠. 동료작가들의 작업실이 주변에 생겨나고 있는 것도 큰 매력이에요!”

임도원

임도원

“학생 때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익숙해요. 여전히 주변 상인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저를 비롯해 많은 작가가 세운상가로 몰려들고 있는데요. 특유의 분위기와 저렴한 임대료가 매력적이지만 사실 작가들의 생활 패턴에 잘 맞는 곳은
아니에요. 저녁이나 공휴일엔 문을 닫아서 작품 활동에 제약이 있거든요. 하지만 이곳의 룰에 적응해가며 규칙적으로 사는 점도 이곳에서 활동하며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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