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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산책

혜화문에서 홍지문까지: 2.1km, 1시간 소요 혜화역에서 상상 어린이 놀이터까지: 1.3km,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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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누구나 혼자서 긴 산책을 하게 마련이다. 귀에는 헤드폰을 쓰고 바스락거리는 갈색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서울 성곽에 기대어 걷는 밤 산책은 꼭 혼자서 즐겨야 하는, 그런 나들이는 아니다. 이 산책의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나는 걸어가며 만난 여러 장소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 그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을 통해 그곳을 더 진하게 기억한다. 내가 언젠가 데이트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책길”이다.
 
이 산책의 전주곡은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있고,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무명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숨이 가빠오는 낙산공원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추억 속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 생각나기도 한다. 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재즈스토리는 기억해두자.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조명 아래서 값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마침내 서울 성곽길에 다다른다. 이곳은 1936년 조선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성벽으로, 북악산, 낙산, 남산과 인왕산 자락을 잇는데 그 총 길이는 18.6km에 이른다. 
 
이 성벽 중 나는 낙산에 위치한 성곽을 가장 좋아한다. 성곽길을 오르다 지칠 때면 내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는 느낌으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초록색 종로 03번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왼쪽에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성곽 지점들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성곽에는 나무에 가려지고 구석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나는 이곳을 종종 ‘서울에서 첫 키스를 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부른다. 해가 질 무렵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공기도 맑을 뿐 아니라,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광경과도 다르다. 요즘처럼 청명한 가을이면 밤에 별을 볼 수도 있다. 서울에서 별을 보는 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니 더욱 특별하다. 경비원이 자리를 비울 때면 사람들은 가끔 성벽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초록색 병에 든 막걸리를 마시기도 한다. 혜화문에서 홍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지어진 성곽은 약 2.1km다. 밤 동안에는 조명이 이 성벽을 밝게 비춰준다. 성벽에는 중간중간 이름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는데, 이것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태조와 세종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어떤 시기에 성곽의 어느 부분을 지었는지 돌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에 지은 부분의 돌에는 건축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건축 날짜도 새겨놓았다. 겨울에 이곳으로 산책을 갈 계획이라면 옷을 꼭 따뜻하게 입고 가자. 눈과 얼음으로 덮인 성곽의 풍경은 추위를 뚫고 방문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성곽길에서 약간 샛길로 빠져 암문(성벽 위에 누각(樓閣) 없이 만들어놓은 문)을 통과해 나오면 장수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선 일층 건물 옥상에서 빨래가 마르고 벽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삼선교로 4길에 위치한 상상 어린이 공원에는 사람 크기의 햄스터 우리와 밧줄 타기 놀이기구 등이 있으니 이곳도 한번 들러보자. 1868년에 지어진 삼군부 총무당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군사기관의 중심 건물이었다. 산책할 거리 자체가 그리 멀지는 않으니 꼭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기를 추천한다. 글 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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