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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사이 공존하는 방배42길

골목 어귀마다 소소한 정성이 깃든 작고 좁은 길이 있다. 옆집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착한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사이 좋은 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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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카페 골목’이 한창 유행할 때가 있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쌍벽을 이루며 오렌지족과 젊은 청춘들이 밤새워 놀던 곳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무색하게 잊혀진 그 카페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길이 뜨고 있다. 서래마을과 방배동 카페골목의 중간쯤에 숨어 있는 좁은 ‘사이길’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방배동 함지박 사거리에서 서래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대로에서 한길 안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개인 작업실과 소규모 갤러리가 모여 있던 이 조용한 길은 수공예 공방과 가게가 촘촘히 자리 잡은 좁은 길로 변모했다. 서울이 SPA 브랜드숍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열광하는 동안, 350m의 한가닥 길에 모인 예술가들은 삼삼오오 뜻을 모았다. 그렇게 ‘사이길예술거리조성회’가 이루어졌고, ‘사이 좋은’ 커뮤니티가 구축되었다. 2012년 5개의 매장으로 시작한 단체는, 현재 37개의 브랜드와 매장이 함께하고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사이길의 매장과 외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함께 모여 ‘사이데이 마켓’도 연다. 소규모 비즈니스와 골목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사이길이 다른 상권과는 차별화되는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것은 이처럼 소규모로 운영되는 브랜드와 매장들이 튼튼한 지역 커뮤니티를 이루며 이타적인 발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 좋은 디자인, 좋은 사람만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정직한 창작물과 먹거리를 만드는 이곳에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소소한 정성이 깃들어 있다.

사이길에만 있는 카페와, 식당, 베이커리

방배목장

방배 사이길 예술거리 조성회의 4기 회장을 맡고 있는 방배목장의 이수진 대표는 사이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우유와 말차 아이스크림도 사실 사이데이 마켓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더욱 좋은 재료의 간식거리를 제공하려고 낸 아이디어였다. 목초를 먹고 자란 소의 우유와, 해남에서 재배한 어린 녹차잎 가루만 사용한 아이스크림은 다음 사이길 방문이 벌써 두근거릴 만큼 훌륭하다. 자연의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도시속의 작은 목장’ 이라는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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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우리밀 손칼국수

새하얀 수입산 정제 밀가루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노르스름한 빛깔의 면발은 낯설기만 하다. 입안에서 투박하게 흩어지는 면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기대 없이 한 숟갈 넘긴 국물이 의아할 만큼 시원해 고개를 들고 매장을 살펴보니  계산대 앞에 ‘구례 우리밀’이라고 적힌 포대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섬진강을 마주한 구례에서 재배한 국산 밀만 사용하는 것이 이 집의 강점. 정제밀로 빚은 부드러운 면발은 사실 제조 과정에서 밀 고유의 영양소가 대부분 탈락된 것이다. 씨눈을 함께 빻아 밀 자체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이 집의 면발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착지근하다. 다양한 산채나물을 얹은 산채보리비빔밥과, 육수가 일품인 바지락손칼국수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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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이 57 아뜰리에

소박한 앞치마를 두르고 수줍게 커피를 내리는 박수이 대표는 집에서 동생과 즐겨 먹던 바삭한 누룽지 파니니만 만들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옻칠을 입힌 원목 트레이와 도자기 컵, 아기자기한 수저 세트 등 카페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식기도 그녀가 손수 만든 작품이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녀는 카페 겸 공방인 이곳에서 다양한 난이도의 클래스도 진행한다. 까다롭게 소량씩 볶아낸 후 블렌딩한 이 집만의 커피는 목 넘김 이후에도 깊고 부드러운 바디감을 자랑한다. 또한 생크림과 함께 아몬드 토핑을 얹은 룽고 콘파냐는 달콤한 크림과 에스프레소의 쌉싸래한 뒷맛을 순서대로 음미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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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블랑제 베이커리

서래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네빵집’이다. ‘르 블랑제 Le Boulanger’ 가 아닌 ‘리 블랑제Lee Boulanger’라는 주인의 성을 딴 이름이 정겹다. 빈티지스러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공간이 나타난다. 빵을 만드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오픈키친과 마치 인테리어처럼 놓여있는 프랑스 밀가루 자루가 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대규모로 생산되는 빵은 아니고, 찾는 이들은 많은 편이라 늦은 오후에 방문하면 원하는 빵을 구하기 힘들다. 브리오쉬 위에 아몬드 크림을 얹은 보스톡, 바삭함과 쫀뜩한 식감이 어우러진 프랑스 전통 과자인 까눌레, 첨가물을 배제하고 자연발효로 느리게 숙성한 뺑드미, 당근과 달걀을 이용해 만든 삼촌빵, 프랑스 밀가루만을 사용한 정통 바게트가 인기다. 연남동 대표 로스터리인 커피리브레 원두를 사용한 커피가 있다는 점도 반갑다. 빵을 구입했다면 2층에도 들러보자. ‘도산공원 당근케이크’로 명성이 자자한 세시셀라 팩토리와 빵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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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디자이너의 쇼룸 겸 가구, 인테리어 숍

마르멜로 디자인

백화점 한켠에 세련된 베딩으로 잘 정돈된 침대 한 개만 놓여 있어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엉덩이를 내려놓고 싶어진다. 사이길을 걷다가 마르멜로 디자인 컴퍼니의 사무실 겸 스토어로 걸음을 옮기면 딱 그런 기분이 든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재단된 침구와, 얼굴을 묻으면 좋은 향이 날 것 같은 쿠션은 모두 친환경 소재의 고급 원단을 사용해 디자인한 것. 향초를 넣어 사용할 수 있는 유리 랜턴이나, 청색 안료로 무늬를 그려 넣은 도자 화병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근사하다. 온라인 스토어도 곧 오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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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길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향수 뮤지엄

뮤제 드 파팡

길목마다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한 프랑스의 남부 도시 그라스는 조향사들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한국의 1세대 조향사 정미순 대표는 그라스의 향기로운 골목을 서울에 재현하고 싶었다. 13년 동안 역삼동에서 조향 아카데미와 공방을 운영한 그녀는 소신 있는 공방들이 하나 둘 자리 잡은 사이길로 과감히 공방과 아카데미를 이전했다. 지난 9월 국내 최초의 조향 갤러리까지 오픈했다. 이곳은 조향 작업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어 향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향을 맡는 1차원적인 체험보다는 향료 추출 과정을 선보이거나 전시로서 향을 전달하는 등 색다른 경로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사이데이 마켓’이 열리는 날에는 맞은편 공방에서 직접 제조한 향수를 구매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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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있는 디자인의 아동복 매장

초코엘

유치한 캐릭터가 프린트된 알록달록한 아동복을 기대했다면 초코엘은 당신에게 적합한 가게가 아니다. 체크무늬 셔츠부터 와인색의 머플러, 귀여운 주름 스커트까지 당신이 입고 싶고 아이에게 입히고 싶은 모던 프렌치 스타일의 아동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상의와 하의를 내복처럼 ‘깔맞춤’한 정도가 아니라 신발부터 액세서리까지 완벽하게 스타일링되어 있다. 어른용 사이즈가 있는지 묻고 싶어지는 세련된 첼시 부츠나 메리제인 슈즈는 기대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까지 제시하니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센스 있는 이모나 삼촌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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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길의 터줏대감 씨엘마린과 세 자매

씨엘마린

플라워숍 씨엘마린을 함께 운영하는 세 자매는 사이길이 황무지였던 9년 전, 지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에서 가까운 이곳에 가게를 얻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사이길의 긍정적인 변모만큼이나 이들의 성장도 화려하다. 아담한 꽃가게에서 출발해 호텔 파티를 총괄 디자인하는 플로리스트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 그러나 여전히 가게 뒤편의 냉장실에는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선보일 생화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보존 용액으로 처리한 이끼에 펠트볼을 장식한 미니 화분은 합리적인 가격에 선물용으로도 제격이다. 주문 제작을 할 경우 손님의 상황과 예산에 맞춘 디자인을 추천한다고 하니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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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길의 역사를 함께한 세 자매

9년 전의 사이길은 어떤 모습이었나?

문혜영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골목이었다. 80-90 년대의 골목길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2-3년 전부터 공방 겸 카페가 하나 둘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사이길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게를 오픈한 이유는?
문혜영 반드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매장을 열고 싶지는 않았다. 방배동에서 자란 ‘방배동토박이’인 우리에게는 이 동네가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세 자매가 함께 운영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문주영 막내(문혜영)가 가장 먼저 플로리스트를 시작했다. 둘째(문나영)는 행정적인 부분을 도맡아 하고 나는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단순한 꽃가게는 아닌 것 같은데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나? 
문혜영 그냥 꽃가게로 봐주셔도 무방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호텔에서 열리는 웨딩파티, 돌잔치 등을 디자인하거나 프로포즈를 위해 예약된 방의 데코레이션을 맡기도 한다. 요즘은 꽃을 담는 화병이나 화분도 직접 디자인 하고 있다.   
 
추천하고 싶은 사이길의 다른 장소가 있다면?
문나영 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한남동에서 오랫동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셰프님이 얼마 전 사이길에 ‘강셰프 스토리’를 오픈했는데 이곳을 종종 찾는다. 
 
사이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나영 주차 공간이 협소해서 상인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혹시 먼 곳에서 사이길을 처음 찾아주시는 분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사이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문주영 항상 주변 상인들과 아이디어도 많이 공유하고, 사이길 조성회를 통한 소통을 하면서 공동체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웃과 다정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이 사이길의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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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Hwang Hye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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