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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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뮤지컬의 전범을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으면서 그 분량에 압도되기는커녕 노래 한 곡으로 소설의 몇백 페이지를 압축하고, 혁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피해가기는커녕 그 역사의식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숭고한 감동을 끌어낸다. 적잖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도식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고, 극 전체가 노래로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무엇 하나 놓치는 것 없이 촘촘하다. 넘버 하나하나는 뮤지컬이 왜 음악의 예술인지를 환상적으로 보여주니,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관객은 그야말로 ‘문제적 인간’일 터.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소재의 역사성에 제한되지 않고 주제의 문학성을 끌어안을 수 있음을 넉넉히 증명한다.
 
그 중심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 배우인 바 그중에서도 장발장 역할을 맡은 양준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양준모가 연기하는 장발장에는 품위가 있다. 그에게는 가창력과 연기력의 객관적 언어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진정성이 있는데, 이 진심은 장발장이라는 인물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그가 부르는 ‘Bring Him Home’은 정말이지 최고다. 이런 배우를 무대에서 만난다는 것은 관객으로서 행운이다. 그 외에도 빛나는 배우들이 적잖다. 이기적이고도 비열한 민중계급을 대표하는 떼나르디에 부인을 연기한 박준면의 존재감은 대단하고, 혼자만의 사랑에 가슴앓이를 하는 에포닌 역의 박지연은 초연 때보다 훨씬 더 애절해졌다. 이 작품의 배우들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귀가 누리는 호사는 충분하다.
 
영상을 활용한 공간 연출도 작품에 생동감을 더하는 현대적 화술이다. 자베르가 강에 뛰어내리는 수직적 장면을 수평적 영상으로 처리한 것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파리 지하의 하수도관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은 극에 긴장감과 사실감을 주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무대의 빠른 전환으로 빈틈없이 공간이 메워짐으로써 자칫 노래로만 이어지느라 늘어지기 쉬운 극의 흐름은 조밀하게 연결되었다.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의 세련됨―바리케이드를 지키던 시민이 한 명씩 학살되는 장면에서의 조명은 죽이는 총성이기도 하고 바라보게 하는 섬광이기도 하다!―에 집중하자면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의 답답함 정도는 금방 잊을 수 있다.
 
고전이란 언제나 새롭게 발견되는 텍스트임과 동시에 지금 여기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에 다름 아니니, "레미제라블"에 담긴 ‘비참한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를 살았던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옆에는 ‘연약하고 약한,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삶의 잔인함 앞에 산산이 깨져버린 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사랑의 마음마저 ‘자기만의 것으로 감추는’ 사람들이 있고,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홀로 서서 살아남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건 단지 선율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절벽사회라는 말이 있다.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의 상황을 빗댄 말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시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삶은 언제나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비참해질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레미제라블"의 ‘비참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삶의 프레임을 거부한다. 이들은 ‘더 이상 노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리케이드를 쌓고, 도망자로 살지언정 자기의 삶을 참회하기 위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삶의 비참함은 어느새 숭고함으로 바뀌어 있다. 비록 바리케이드에서 죽을지언정, 도망친 죄수라는 원죄가 있을지언정 사람을 향한 사랑을 완성하는 힘은 오직 그들에게서 나온다. 혁명이란 숭고한 사랑의 힘에 다름 아님을 "레미제라블"은 보여준다. 혁명이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할 것은 사랑이다.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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