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Theater,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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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Seensee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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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nsee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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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nsee Company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인 연극. 그렇지만 어렵지 않다.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의 일부를 그린 연극 [레드]는 그가 손목을 긋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피 냄새 나는 듯한 붉은 그림처럼 강렬하다. “그림은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감성적인 감상자에 의해 확장되고, 생장한다”고 마크 로스코는 말했다. 음악과 문학, 철학과 고대 그리스 신화를 사랑했던 그의 ‘말’은, 회화에 대한 그의 태도이며 동시에 연극 [레드]를 읽어나가야 할 관객의 태도이다.
 
연극의 배경은 1950년대 후반,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이다. 예술이 ‘상품’이 되는 것을 경멸했던 그는 돌연 시그램 빌딩의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장식하기 위한 벽화 의뢰를 받아들이고, 40여 점의 대작 벽화를 완성하기 위해 젊은 화가 켄을 조수로 고용한다. [레드]는 작업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로스코와 켄, 두 사람의 대화로만 구성됐다. 예술의 방법이나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하는 이 둘은 마치 교수와 학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화 안에서 로스코가 특히 심취했던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앙리 마티스의 ‘붉은 화실(The Red Studio)’ 등이 주요한 논쟁거리로 인용되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이름도 수없이 등장한다.
 
연극 [레드]는 크게 마크 로스코와 켄을 통한 세대 간 충돌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극중 젊은 남자인 켄은 로스코의 세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실제 당시는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낸 마크 로스코의 ‘추상 표현주의’가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협받던 시기다. 역사가 흐르는 이상 언제나 있어왔던 세대 간의 충돌을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해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회화에 대한 설명이란 ‘회화와 관람자 간의 완전한 만남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한 로스코 앞에서, 이 작품을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극중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이 둘은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린다. 두 명의 배우는 관객 앞에서 일상을 재현한다. 로스코와 켄의 대화는, 로스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며, 켄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극중 로스코는 구시대적인, 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서, 켄보다 로스코에게 공감할 수 있다. 가치 있음을 평가하는 잣대, 모든 것을 ‘좋다’고 하는 요즘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 과연 아름다운 것만이 중요한 걸까라는 그의 물음에 동의하게 된다.
 
미술사학 · 철학 · 인문학 등 두 사람이 나누는 심도 깊은 이야기를 모두 알아듣는다면 남모르게 뿌듯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몰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려운 단어의 나열에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보고자 하면 누구나 공감하고 로스코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다. 극중 이런 장면이 있다. 무엇이 보이냐는 로스코의 물음에 켄이 이렇게 답한다. “레드가 보여요.” 이어 로스코가 다시 질문한다. “어떤 레드?” 마크 로스코가 관객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본 [레드]는 어떤 레드인가?
 
연극 [레드] 중 로스코의 많은 대사가 실제 그가 했던 말로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 로스코의 인생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메모하고 싶은 아포리즘이 많을뿐더러, 대화 자체가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 그 순간, 보고 싶은 회화 작품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짜일 수도 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스코의 ‘비극’에 집중하지 않은 구성이 또한 좋다. 그리고 로스코와 켄이 커다란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칠하는 장면의 쾌감이 엄청나다. 캔버스가 붉게 물드는 동안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잊을 만큼 말이다.

글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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