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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

컬렉션을 본 칼 라거펠트는 그녀에게 ‘천재’라고 말했다.

작성:
Jin-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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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패션 스쿨인 런던 세인트마틴 스쿨을 최연소 입학하고 졸업하자마자 개인 브랜드 ‘KYE’ 론칭. 작년에는 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 프라이즈(LVMH Prize)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했고, 컬렉션을 본 칼 라거펠트는 그녀에게 ‘천재’라고 말했다. 타고난 재능으로 실패라곤 모르고 달려왔을 것 같은 그녀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제대로’, ‘열심히’였다.

이번 패션위크에서는 카이(KYE)뿐만 아니라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 진행한 컬래버레이션까지 컬렉션 2개를냈다. 힘들지않았나?

준비하면서 “다음부턴 진짜 하나만 해야겠다” 생각했다.(웃음) 사실 배민이 처음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을 때는 뭘 하자는 건지 궁금했다. 유니폼을 만들자는 건가? 근데 배민에서는 한글 폰트를 패션에 접목하고 싶다고 하더라. 신선했다. 배민과의 작업은 브레인 스토밍까지 반 년 정도 걸렸다. 심각한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게 우리 브랜드와 맞기도 해서 쇼 피스를 제작하고 컬렉션까지 하게 됐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건 괜찮았는데 오히려 같은 시기에 준비한 첫 전시(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린 ‘The Space Collection’)가 힘들었다. 다른 장르라 불안했다. 런웨이에 서는 한 사람의 몸을 채우는 것과 공간을 채우는 건 다르니까.

한글을 모티브로 한 옷 중에도 새로웠다. 젊고 톡톡 튀는 느낌이었다.  

한글이 들어간 기존의 옷 중에는 이상봉 선생님 컬렉션에 있는 붓글씨처럼 클래식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이 대부분이다. 나는 조금 다르게 세련된 분위기와 스트리트 무드를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 옷에 있는 한글을 잘 읽을 수 있고, 위트도 느껴지게. 그래서 이중적인 의미의 문장이나 말장난을 같이 넣었다.

본 컬렉션은 ‘HATE’(증오)가 주제였다. 이유가 궁금하다.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을 이미지화해서 작업한다. 이번 시즌에는 미움을 받았나?(웃음) 문화적으로도 서로 ‘디스’하는 게 흔해지고, 친구끼리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걸 무 쉽게 어떤 놀이처럼 여기는 것 같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가벼워지는 그런 불편한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컬렉션에서는 청년실업’, ‘힐링’처럼 추상적인 주제를 많이 풀어왔다.

영화나 미술 작품처럼 시각적인 것을 보고도 영향을 받지만, 그런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부수적인 부분 같다. 이미 다른 작가의 눈으로 해석된 것을 또다시 보고 영감을 받는 거니까. 그것보다는 아예 내 생각을 시각화하는 게 좋다.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옷으로 풀어내는가?

이를테면 이번 시즌은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HATE’라는 하나의 단어에 착안했다. 어두운 감정을 밝게 표현하면서도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도 담기 위해 타이포그래피 요소를 넣었다. 문득 배신의 상징인 뱀이 생각나서 그런 요소를 가미하고. 그러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면 친구에게 전화해서 “아이디어를 내!”라고 말한다.(웃음)

2011년 브랜드 론칭 이후 5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개인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어서(우연히 쇼를 본 ‘캔디샵’ 바이어에게 제안받았다) 매번 쇼를 하면서 계속 배운다. 처음부터 옷이 안 팔려도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은 확실했다. 특히 나처럼 젊은 디자이너들은 에이랜드 같은 대형 유통 매장의 유혹이 있다. 그러나 그런 곳에 진출하면 단기적으로 성공해도, 롱런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대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컬렉션이 단단할수록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게 되니까.

많은 로컬브랜드가세컨드라인을내는데, 카이는 세컨드 브랜드를 내지 않았다.   

국내 브랜드가 인하우스(In-house)에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면 대부분 티셔츠에 로고 박아서 쇼핑몰에 파는 게 대부분이지 않나. 나도 다른 브랜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만약 할 거라면 대충하고 싶지는 않다. 카이라는 브랜드와는 따로, 이름도 다르게 달고 제대로 만들고 싶다.

 

서울의 디자이너로서, 서울의 패션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패션이 많이 죽은 유럽에 비해 아시아는 패션을 많이 소비하는 편이다. 해외 패션쇼장에도 아시아 바이어가 많고 프런트 로에도 아시아인이 많다. 서울도 그만큼 중요한 시장이지만, 아직 중심은 아니다. 여전히 브랜드 카피가 넘치는 점은 아쉽지만, 동대문의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오늘 무언가를 맡겨서 당장 내일 받아볼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노동 중독 같은 분위기가 나와도 잘 맞는 편이다. 유럽은 뭔가를 맡기면 두 달 있다 오는 그런 슬픈 일이 벌어지니까.  

내년계획을 미리 알려준다면?  

오늘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일주일 후, 다음 시즌, 내년까지 러프하게 계획을 잡지만 오늘 열심히 하면 내일이 잘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사실 실망하는 게 싫어서 목표를 안 잡는 편이기도 하다. 뉴욕과 서울에서 컬렉션을 하는 건 당연하고, 곧 대형 컬래버레이션이 하나 나온다. 내 인생에서 제일 오래, 1년 반 동안 준비한 작업이다. 그리고 연초에는 카이와는 분리된 새로운 여성복 브랜드를 론칭할 거다. 이 역시 제대로 된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다. 기대해달라. 

남다른 주제로 주목 받았던 카이의 컬렉션들

2013 F/W ‘청년 실업, 홈리스’
사진제공=KYE

1. 2013 F/W ‘청년 실업, 홈리스’

당시 사회적으로 화두였던 ‘청년실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홈리스’ 라는 단어에서 떠올린 소재, ‘박스’의 실제사진을 티셔츠 전면에 배치하거나, 그래피티 프린팅을 과감히 사용한 의상으로 주목 받았다. 

2014 S/S ‘힐링’
사진제공=KYE

2. 2014 S/S ‘힐링’

‘아픈 청춘’들이 상처 받은 모습과 치유를 위한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냈던 컬렉션. 상처 받은 청춘을 ‘반창고’라는 비주얼 요소로 풀었다. 특히 반창고를 골드와 실버 컬러로 만들어 ‘상처’라는 개념을 위트 있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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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S  ‘꿀벌’
사진제공=KYE

3. 2015 S/S ‘꿀벌’

지구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이 위협에 처해있는 현재의 상황과 나아가 자연 생태계, 순환(사이클), 파괴 등에 대해 이야기 했던 컬렉션. 사이클에서 체인의 일러스트를 만들어냈고, 꿀벌의 프린팅을 의상 전면에 크게 담았다. 추상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젊은 분위기로 풀어냈다. 

2016 배달의민족xKYE
사진제공=KYE

4. 2016 배달의민족xKYE

이번 시즌 배달 앱 '배달의민족'과 카이가 함께 협업한 컬렉션. 가독성이 뛰어난 한글 프린팅,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호평 받았다. 브레인스토밍부터 제작까지 6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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