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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팬이 된다는 것

감독 데뷔 20년, 그리고 17번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개봉한 지금,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나처럼,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된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홍상수 감독이 이미 17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18번째 영화가 제작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감독의 많은 영화는 한꺼번에 여러 편을 몰아서 볼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에 있는 영화들을 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 꼭 그의 영화가 밀도 있게 만들어졌거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서로 닮아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영화가 경험이며 동시에 우리의 욕망과 자아에 대한 반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 꾸러미를 푸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여운이 진하게 남아 우리 안에서 천천히 여과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또한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의 영화는 무심하게 흘러간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끝없는 대화는 실제로 무심하고 심지어 가끔은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작품 안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연결고리이며 그저 단순한 우연에 맡겨진 것은 아무도 없다. 홍상수 감독은 촬영 날 아침까지도 그날 찍을 장면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고민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스크린에는 항상 감독이 의도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주저하는 몸짓이나 어색한 제스처, 중얼거리는 말들, 속삭이는 웅얼거림 등 모든 것이 그 영화의 일부이며 그것들이 모여 감독의 작품에 의미와 질감, 뉘앙스를 더해준다.
 
하지만 다른 것은 접어두더라도 그의 작품 세계에 입문한다는 것은 그의 영화를 하나의 거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영화 내러티브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심과 옹졸함,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언제나 따져보는 모습 같은 것들을 거울처럼 반사한다. 사실, 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영화감독이나 교수는 사회의 작은 부분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 안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위기에 맞닥뜨리기도 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오싹할 정도로 친근한 인물묘사에 오롯이 몰입하게 된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 익숙해지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를 섭렵하고 싶다면 그의 첫 번째 작품이자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조금 더 유쾌한 작품인 "옥희의 영화"(2011)를 추천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는 그의 최근 작품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를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유머와 깊이가 있으며 억지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 세계를 완벽하게 응축해서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한눈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초초해하지 말고 이것만 기억하자. 인내심을 가질 것, 영화에서 눈을 떼지 말 것,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글 피어스 콘랜(영화 평론가)
 
글을 쓴 피어스 콘랜(Pierce Conran)은 저널리스트이자 감독이며 한국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트위치필름 등에서 발간하는 여러 매체에 기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및 국제적인 영화제작회사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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