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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 Hwan Kim

드래그 퀸, 김치(KIM CHI)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는 드래그 퀸 서바이벌 프로그램 <RuPaul’s Drag Race> 시즌 8에서 TOP 3에 진입한 김치(KIM CHI). 한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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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 SKRT를 가득 채운 사람들. 관객들의 환호 속에 모습을 드러낸 ‘김치(KIM CHI)’는 <RuPaul’s Drag Race> 시즌 8 파이널 에피소드에서 입었던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립싱크를 시작했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실로 처음 느낀 아름다운 그 광경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김치의 본명은 신상영,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해온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우연히 드래그 퀸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드래그 쇼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미국 유명 드래그 퀸 서바이벌 오디션 쇼에 출연해 TOP 3 순위까지 진입했고, 쇼를 통해 완벽한 메이크업과 특유의 순수하고도 러블리한 매력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5년 만에 드래그 퀸이 되어 모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글 김루비 (데이즈드 코리아)

Tae Hwan Kim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반갑다. 오랜만에 와서 기분이 좋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미국에서 지냈는데, 중간에 고등학교 2년은 한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이곳이 낯설지 않다. 올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클럽 SKRT에 당신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 했다. 10명 정도 모이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사실 당신이 오기 전부터 내한 소식으로 SNS에서 난리였다.

정말인가? 몰랐다. 클럽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보고 정말 감격했다.

 

퍼포먼스를 하다가 무대에서 눈물을 보일 뻔했지만 “절대 울지 않을 거야”라며 꾹 참더라.

내가 뭘 하든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언제 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싶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주 오고 싶다.

 

공연에서 한국 가요를 불렀다. 일부러 한국어로 된 곡을 선곡한 건가?

맞다. 앨범을 단 한 장 내고 사라진 그룹 모닝의 ‘습관’이라는 곡인데, 고등학교 다닐 때 매일 듣던 노래다. 개인적으로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힘이 많이 됐던 노래라서 관객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거미의 ‘그대 다시 돌아오면’도 부르고 싶었지만 너무 슬퍼서 뺐다.

 

공연 소감을 말하면서 한국에서 공연하는 게 소망이었다고 했다.

16세 시절 한국에 있을 때 이태원을 들락거리며 놀았다. 꼬맹이 때부터 그랬다(웃음). 내 기억에 그때는 트랜스젠더, 드래그 퀸을 본 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언제 한번 한국에 가서 미국식의 드래그 퀸을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드래그 퀸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발하더라.

 

한국의 다른 드래그 퀸들도 만나봤나?

물론. 굉장히 신비롭더라. 공연 짜임새도 전문가다워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반겨줘서 좋았다.

 

한국에도 LGBT 컬처가 많이 개방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드래그 퀸을 생소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기회에 좀 많이 알려질 것 같다.

그럼 다행이다. 나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봤는데, 어떤 뉴스에는 내가 트랜스젠더로 소개됐더라.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와 드래그 퀸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Tae Hwan Kim

<RuPaul’s Drag Race> 쇼를 비롯해 드래그 퀸 쇼에 트랜스젠더는 참여할 수 없다던데, 맞나?

그렇다. 드래그 퀸 쇼를 하는 동안은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드래그 퀸을 연기하는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나 드래그 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하는 드래그 킹 쇼도 있다.

맞다. 미국에는 드래그 퀸, 킹이 정말 많다.

 

그, 그녀 중 어떤 호칭이 좋은가?

어떤 사람들은 분장을 안 하면 드래그 퀸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도 한다던데, 나는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없다. 결국 그, 그녀 모두 나라는 사람의 자아니까.

 

맨 처음 드래그 퀸 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3~4년 전쯤 친구가 할로윈데이에 드래그 퀸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RuPaul’s Drag Race> 시즌 7에 나온 펄이라는 친구다. 그래서 재밌겠다 싶어 꾸미고 거리에 나갔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미국의 네버랜드라는 게이들의 유명한 파티에 호스트로 초대됐다. 그 뒤로 그래픽 디자이너를 관두고 드래그 퀸 파티를 주관하는 팀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시카고에서 드래그 퀸 쇼를 풀타임으로 하다가 그 쇼에 나가게 됐다.

 

TOP 3 안에 든 최초의 한국인인데, 소감이 어떤가?

미국 TV에 최초로 나온 한국인 드래그 퀸이니 부담감이 있긴 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영어 못하고 덜렁대는 동양인의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쟁 같은 서바이벌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힘들다기보다는 내가 몸치라 춤을 잘 못 추는 게 아쉬웠다. 미술적인 것은 많이 알지만 연기나 춤은 배운 적이 없고, 드래그 퀸을 하면서 처음 시작했다. 지금도 틈틈이 배우고 있고, 내년부터는 정식 레슨을 받으려고 한다. 내가 드래그 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배울 게 참 많다.

 

개인적으로 당신이 <RuPaul’s Drag Race>에서 한복을 입고 나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아마도 8회 에피소드지? 그때 엄마에게서 영감을 받아 한복을 입었다. 전통 한복을 가지고 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한국 여성들이 어깨가 작고 허리는 되게 가늘어서 한복들이 죄다 내게는 작더라. 결국 스타일리스트 친구랑 같이 2주 동안 작업해서 만들어 입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이 동양을 생각하면 기모노를 떠올리는데, 한복처럼 이렇게 실루엣이 아름다우면서 스케일이 크고 멋진 옷이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한복이 가진 풍성하고 장엄한 미를 표현하고 싶어 일부러 디자인을 조금 더 과장되게 했다.

 

당신이 눈여겨보고 있는 케이팝 디바, 혹은 영감을 주는 뮤즈는 누구인가?

진짜 많은데, 오렌지캬라멜! 특히 패션이 너무 귀엽고, 콘셉트가 확실한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클램프라는 일본의 만화가를 좋아한다. 드래그 퀸을 할 때 그가 그린 만화 캐릭터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화장품 회사를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오, 축하한다!

우선은 슈가피라는 회사와 함께 립스틱과 아이섀도 제품을 론칭하게 됐다. 많이 팔리면 좋겠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잘 마치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

 

마지막으로 김치의 꿈은 무엇인가?

내 꿈은 소박하다. 돈도 많이 필요 없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 편하게 살고 싶고, 준비하고 있는 뷰티 브랜드 일이 잘됐으면 좋겠다.

(Photographs: Tae H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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