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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에서 ‘프라이드’를 외치다!

자긍심 높인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또다시 기대하며.

서울의 중심에서 ‘프라이드’를 외치다! 자긍심 높인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또다시 기대하며.

 
PHOTOGRAPH: SHIN HYOSEOP

‘프라이드’에 처음 참가한 것은 세기말이었다. 1999년에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캐나다로 간 것은 오로지 IMF 금융위기로 미국 달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누가 말했다. “캐나다는 지루해. 밴쿠버는 더 지루할걸.” 과연 지루했다. 도심으로부터 3존이 떨어진(그러니까 처음 6개월을 일산쯤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역에 홈스테이를 했던 탓도 있었다. 헝가리계 영감님과 이탈리아계 영감님이 운영하는 홈스테이에는 한국인과 일본인과 대만인만 있었다. 헝가리계 영감님은 항상 자신만의 퓨전 아시아 음식을 만들었다. 감자 그라탱에 김치가 올라갈 때도 있었고, 중국식 볶음면에 와사비가 나올 때도 있었고, 하여간 희한한 음식들이었다. 이 지루한 곳에서 내가 1년을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어느 날, 나는 영감님들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들을 발견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뭐 그럴 수도 있다. 영감님들에게는 그저 전성기 시절 듣던 컨템퍼러리 팝일 테니까. 배트 미들러. 흐음. 뭐 그럴 수도 있지. 도리스 데이. 어럽쇼? 결국 나는 빌리지 피플 LP를 발견하고 깔깔 웃었다. 영감님들은 커플이었다. 게이 컬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아시아 학생들은 그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속일 수가 없다. 영감님들도 눈치를 챘다. 그러고는 나에게 슬그머니 이런저런 속에 있는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탈리아 영감님이 슬쩍 정보를 흘렸다. “이번 주말에 시내에서 ‘밴쿠버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 거 아니? 가봐. 넌 재미있어할 거야. 놓치면 안 되지 이런 건.” 프라이드 퍼레이드? 밴쿠버 시민으로 사는 것이 자랑스러워서 열리는 퍼레이드인가? 물론 아니었다. 성소수자들의 퍼레이드였다. 나는 홀로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카메라를 들고 시내로 뛰쳐나갔다. 태어나서 그런 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자긍심의 퍼레이드였다.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그 순간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프라이드에 감염됐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언젠가는 밴쿠버에서와 같은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릴 거라고 기대했다. 기대는 2015년까지 충족되지 않았다. 아, 물론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는 2015년 이전에도 몇 번이나 열렸다. 그러나 작년의 퍼레이드는 달랐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드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시청 앞 광장에 모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때도 끝내주게 좋았다. 바로 전날 미국 대법원은 동성결혼 법제화를 선언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과 시카고와 수많은 미국 도시의 광장에 성소수자와 친구들이 모여 기념비적인 날을 축하했다. 나는 밤까지 동성결혼 법제화 기사를 썼다. 맥북 앞에서 가슴이 벅차 올랐다. 기사 문구들은 과잉된 표현으로 가득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감상적인 형용사로 가득한 기사가 어울리는 순간도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그 감정의 과잉은 그날 밤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라면 환한 대낮의 광장에 얼굴을 비출만한 용맹함이 없는 친구들을 다음 날 퍼레이드로 이끈 것도, 바로 그 프라이드라는 감정의 과잉이었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이루어진다면, 먼 훗날 역사책에는 그 모든 변화가 2015년 6월에 시작된 거라고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사실 나는 지난해 퀴어 퍼레이드에서 만난 친구와 연애를 했다. 성소수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인 장소는 처음 와본다며 수줍어하며 놀라던 남자였다. 연애는 꽤 오래갔다. 6개월이나 갔다. 나의 평균 연애 기간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기간이니 그 정도면 많이 버틴 것이다. 물론 헤어진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연애의 화상은 아물었고, 나는 올해도 퀴어 퍼레이드에 갈 것이다. 꼭 거기서 만난 누군가와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옷은 최대한 노출이 심한 것으로 예쁘게 입고 갈 것이다. 꼭 거기서 만날 누군가와 연애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서는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올해 퀴어 퍼레이드에서 나와 마주친다면 꼭 인사를 해줬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꼭 거기서 만날 누군가와 연애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서는 아니다. 그저 프라이드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그러다가 눈이 맞는다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글 김도훈(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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