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여섯 살이다. 전라도에서 서울의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해 상경했다. 친적집과 고시원, 작은 원룸을 전전하며 지낸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정확히 3년 전 여름 데이팅 앱에서 한 남자를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그의 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그는 대기업 전자회사의 연구원이었는데 나보다 열아홉 살이 많았다. 어이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형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부모님은 선배와 같이 사는 줄 안다. 나의 건강과, 식단, 학업 성적이나 취업에 필요한 정보와 배경을 관리해준다. 생활비와 핸드폰 요금도 형의 도움을 받고 있다. 대신 나는 형을 ‘돌본다.’ 아침을 차려 출근을 시킨 후,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하며 형을 기다린다. 각종 공과금이이나 관리비 납부, 분리수거도 내 몫이다. 이웃 주민에게는 우리를 ‘삼촌과 조카’ 정도로 소개했지만, 동네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한 번씩 ‘아버지와 아들’ 소리를 듣기도 한다. 형은 그럴 때마다 난처한 표정을 짓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무 상관없다. 실제로 우리는 연인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니까. 얼마 전 새벽녘 형의 몸이 펄펄 끓어 급히 응급실을 찾은 일이 있다. 나는 그의 보호자가 확실한데 병원에서는 아니라더라. 처음으로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황인성, 2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