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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잭스 감독의 영화 '라잇 온 미' 중에서
아이라 잭스 감독의 영화 '라잇 온 미' 중에서

동성애자로 함께 산다는 것은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는 커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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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으로 이어온 10년의 연애

K를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게이 형의 개인 웹사이트에서였다. 벡(Beck)의 ‘Lost Cause’가 발매됐고, 나는 그 뮤직 비디오를 그곳 게시판에 공유했는데 K가 자신도 벡의 팬이라며 내게 댓글을 달면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에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됐고 그날 밤 그의 작업실에서 (희미한 기억으론) 최소 30 분의 키스를 하면서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10년 동안 내내 같이 살았다. 그 사이에 둘 다 학교도 졸업했고, 나는 군대도 다녀왔다. 연애 초반, 술과 밖을 좋아하는 나는 집 안과 둘만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그와 자주 다투었다. K와의 연애가 가장 절절했던 순간은 내가 뒤늦은 입대를 하면서였다. 21세기의 연인들 중 K와 나만큼 필담으로 연애의 긴장을 유지해나간 커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확히 연애 10년 차가 되던 해 K 는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했다. 2년 동안 군대 간 나를 얌전히(!) 기다렸던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오랫동안 미뤄온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지난 10년간 쌓인 집 계약서와 여행 사진들, 옷가지들 앞에서 흡사 나는 계약 이별을 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요즘은 디지털 신호로 K를 만난다. 어린 시절
본 도라에몽에서나 나왔을 법한 K와의 화상 통화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적당히 권태롭고 이상하리만치 안전하다. 우리의 10년의 연애가 그랬듯.─김현우, 32세

아버지와 아들 소리를 듣지만...

나는 스물여섯 살이다. 전라도에서 서울의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해 상경했다. 친적집과 고시원, 작은 원룸을 전전하며 지낸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정확히 3년 전 여름 데이팅 앱에서 한 남자를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그의 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그는 대기업 전자회사의 연구원이었는데 나보다 열아홉 살이 많았다. 어이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형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부모님은 선배와 같이 사는 줄 안다. 나의 건강과, 식단, 학업 성적이나 취업에 필요한 정보와 배경을 관리해준다. 생활비와 핸드폰 요금도 형의 도움을 받고 있다. 대신 나는 형을 ‘돌본다.’ 아침을 차려 출근을 시킨 후,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하며 형을 기다린다. 각종 공과금이이나 관리비 납부, 분리수거도 내 몫이다. 이웃 주민에게는 우리를 ‘삼촌과 조카’ 정도로 소개했지만, 동네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한 번씩 ‘아버지와 아들’ 소리를 듣기도 한다. 형은 그럴 때마다 난처한 표정을 짓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무 상관없다. 실제로 우리는 연인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니까. 얼마 전 새벽녘 형의 몸이 펄펄 끓어 급히 응급실을 찾은 일이 있다. 나는 그의 보호자가 확실한데 병원에서는 아니라더라. 처음으로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황인성,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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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 정으로 생긴 믿음

나와 애인은 스물넷 동갑이다. 나는 메이크업을 공부하고 있고, 애인은 공익근무요원이다. 우리는 열아홉 살에 종로 술 번개에서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서로 첫눈에 반했고 사귀게 되었는데,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는 일이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함께 살았다. 룸메이트 친구와 함께 산다고 하자 양쪽 부모님 모두 안심하는 눈치였고, 보증금이나 월세를 반씩 부담하니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큰 타격은 없었다. 중간에 두어 번 애인과 헤어진 적이 있다. 그 시기에도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았고, 그때는 정말 룸메이트로 지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다시 연인이 되어 있었다. 주말마다 보광시장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다. 우리가 함께 산 지 4년이 되었는데, 나는 올해 말에 현역으로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떨어져 지내야 하지만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거다. 그건 아마 우리가 보통의 연인이 아닌 함께 산 정이 있기에 가능한 믿음 같다. – 이름을 밝힐 수 없는 24세

내가 요리를 하면 그는 디저트를 굽는다

7년 전에 만나 6년째 같이 사는 파트너가 있다. 이태원의 한 유명 게이바에서 처음 만나 함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을왕리에서 칼국수를 먹기로 약속이 돼 있던 나는, 지방으로 돌아가려고 나서는 그에게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그렇게 ‘을왕리 미애네 칼국숫집’이 우리의 첫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그는 당시 지방 도시에 살고 난 서울에 있어서, 서울 아니면 지방에서 주말 만남을 가졌다. 취미가 비슷한 우리는 만난 첫해에 발리 우붓으로 여행을 떠났고,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다. 만난 지 일 년쯤 돼서 그가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한 번은 그가 “네가 컴퓨터게임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우리의 오랜 관계는 불가능했을 거다”라고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큰 이유인 것 같다. 또, 내가 요리를 하면 그는 디저트를 오븐에 맛있게 굽는다. 몇 번의 헤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문제의 해결은 역시 많은 대화였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관계보다는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희생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은 상대의 기분을 먼저 헤아려주는 배려가 생겼다. – 김우현, 48세
■ 최지웅(데이즈드 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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