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현 개인전: 꿈

Art
  • 3 최대 별점 5개
0 좋아요
저장하세요
조덕현 개인전: 꿈
courtesy of the artist and Ilmin Museum of Art

여기가 민속박물관인가. 조덕현 작가의 신작으로 구성된 1층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든 생각이다. 눈앞에 있는 벽면에는 조덕현이라는 인물의 삶이 연보 형식으로 쓰여 있고,그 아래에는 옛날 영화 포스터와 영화 스틸로 추정되는 흑백사진이 유리 진열장에 나열돼 있다. 왼편에는 창문 하나에 문이 빼꼼 열린, 초라한 옛날 집까지 있으니 1950–80년대의 한 특정 시대에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은 실험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한 꺼풀씩 보여주는 일민미술관. ‘조덕현 이야기’는 한 사람의 역사를 통해 특정 시대상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자화상은 아니다. 조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동명이인인 배우 조덕현에게 1위 자리를 뺏긴 것을 알게 되며 지금의 ‘조덕현 이야기’의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여러 ‘조덕현’의 인생 이야기를 설치 작업, 비디오와 회화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조 작가는 한 블로그를 통해 발견한 영화배우 조덕현(1914–1995)의 화려하고도 고독한 삶에 매료되었고, 고 조덕현은 소설가 김기창이 전시를 위해 펴낸 <하나의 강>의 소재가 되었다.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 한 소설과 전시의 영감이 된 것이다. ‘조덕현 이야기’의 ‘조덕현’은 “상하이에서 영화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국 출신 영화배우 김염을 찾아[가고]”, 1962년 할리우드 영화인 <키드 갈라드>의 험프리 보가트를 대신해 출연했으며, <청춘 쌍곡선>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온다. 글로는 믿기 어렵지만 전시장 벽의 연보에 쓰여 있고, 이 모든 영화에 ‘조덕현’이 등장했던 명장면들이 벽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얼핏 보면 흑백사진 같지만 조 작가가 연필로 한지에 옮긴 허구의 스틸 컷이다. 보이지 않는 비밀은 하나 더 있다. 조 작가의 연필 작업 속 연거푸 등장하는 ‘조덕현’은 네이버에 조덕현을 검색하면 제일 첫 번째로 뜨는 영화배우 조덕현(1967)의 얼굴이라는 사실. 현직 영화배우 조덕현(1967)이 ‘조덕현 이야기’를 위해, 특정 영화 장면의 한 배우를 대체하기 위해 얼굴 연기를 한 것이다. 조 작가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또 그 사진은 한지 위로 옮겨졌다. 옛날 영화에 박식하지 않으면 더 진짜 같이 보이는 스틸컷들.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거친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배우 조덕현(1967)이 연기한 노인 ‘조덕현’의 목소리다. 방 너머 또 다른 방에 들어설수록 ‘조덕현’의 정체에 대한 단서는 쌓이지만 머리는 그만큼 지끈거린다. ‘조덕현’은 대체 누구인지. ‘조덕현’은 작가가 연구와 상상을 통해 수소문한 조덕현들의 가상의 꿈으로 추정된다. 2층 전시실에는2000년 후부터 조 작가가 작업해온 대표작이 있고, 3층에는 시간이 멈춘 숲을 연장시키는 공간에,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윤이상의 ‘공후’와 ‘에스파스’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위층에 있는 작업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조덕현 이야기’를 머리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뇌에 공백 기간이 필요하므로. 나머지 층은 다음 주말, 새로운 마음으로 봐도 늦지 않다. 하루에 한꺼번에 삼키기는 어려운 전시다.

글 박진영

이벤트 전화 02-2020-2050
이벤트 웹사이트 http://www.ilmi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