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 백년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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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MMCA (COURTESY OF THE ARTIST,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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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MMCA
COURTESY OF THE ARTIST, MMCA (COURTESY OF THE ARTIST,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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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MMCA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어요. 독신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아고리는 그런 타입의 화가는 아니에요.” ‘아고리’는 턱을 뜻하는 일본어 ‘아고’에 이중섭의 성을 붙인 별명이다. 한국전쟁 중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아내에게 그는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수많은 그림편지를 보냈다. 일본어 원본을 한국어 번역본과 함께 전시한 낭만적인 그림편지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이 과연 100년 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맞나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편지는 약 70통, 매수로는 150장에 이른다. 개인적인 연가이자, 자유롭고 즉흥적인 드로잉마저 예술적인 그의 편지 중 일부가 공개됐다. 1916년에 태어난 작가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았던 탓에 그의 유작은 뿔뿔이 흩어졌다. 작가가 그토록 사랑했던 러브레터의 주인공 마키코(한국이름 이남덕) 여사마저 그의 편지를 전부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국립현대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의 작품 200여 점을 총 60군데 소장처로부터 대여했다. 편지를 포함한 사진과 친필, 유품 등 그의 삶을 기록하는 100여 점의 자료 또한 함께 공개한다. 
 
전시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태어난 직후부터 일본 유학을 거쳐 원산에서 마사코와 결혼한 ‘원산시대’, 1950년 전쟁을 피해 제주도와 부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던 ‘서귀포-부산 시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며 작품활동에 매진했던 ‘통영시대’, 마지막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질환,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했던 ‘서울과 대구 시대’로 나뉜다. 시대별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가난했지만 가족과 함께한 제주도 시절의 그림은 아기자기하고 행복하다.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봄의 아동> 같은 작품은 환상적인 자연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그가 이 시기에 느꼈던 애정과 평온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그가 운명을 달리하기 직전 서울에서 남긴 쓸쓸한 정릉의 풍경화와, 친구 구상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태워주는 모습을 담은 <시인 구상의 가족>과 비교하면 더욱 애잔함이 밀려온다. ‘가장의 역할도 못하고, 예술을 한답시고 공짜 밥을 얻어 먹으며 무슨 대단한 예술가가 될 것처럼 세상을 속였다’고 자책하던 그는 끝내 아들에게 약속한 자전거를 사주지 못했다. 거식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던 그가 연필로 자화상(1955)을 남긴 것도 이 시기이다. 그림 속 쓸쓸한 그의 모습에는 생기가 없다. 
 
이 외에도 ‘황소’ 시리즈를 비롯 다양한 풍경화를 남긴 ‘통영시대’와 은지화를 따로 모은 전시실에서도 그의 생소한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은지화는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긁어 완성하는 방식으로 이중섭이 개발한 기법이다. 반짝거리는 표면과 대비되는 긁힌 자국은 아주 오래된 그림을 보는 듯한 묘한 매력을 지닌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3점도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웅장하고 기개 넘치는 황소 그림으로 각인된 작가 이중섭의 작품은 은연 중에 장착된 ‘국민화가’로서의 이미지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인간적이다. 일단 가족에게 쓴 편지를 감상하고 난 뒤에는 전시장의 모든 그림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기도 하지만, 유독 가족과 자연, 아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은 것에서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겹을 쌓아 올려 한 줄기의 형태를 잡아내는 그의 필치에서도 사진이나 도판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섬세함과 깊이가 느껴진다. 식민 시기와 전쟁, 가족과의 이별, 정신 질환 등 하나만 겪어도 힘들 일을 두루 겪으며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작가 이중섭.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학예사는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이번이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수 작품의 출처가 ‘개인 소장품’이다. 70년대 이중섭의 작품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에도 팔지 않고 간직한 열혈 컬렉터들의 보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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