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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초록은 비슷한 차림새로 거리를 활보하는 서로 다른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COURTESY OF PAK GREEN

잔 스포츠(Jan sports)라는 한 미국 브랜드의 백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들은 끈을 꽉 조여 맨 각기 다른 색의 가방을 거북 등딱지처럼 메고 다녔다. 그 다음엔 레스포삭(Lesposac)이, 또 언젠가는 키플링(Kipling)이 그랬다. 한국의 중고생들은 시대별로 브랜드를 바꿔가며 비슷한 가방에 열광했다. 작가 박초록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부모님을 졸라 유행하는 옷은 다 사 입어야 했고, 남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누구보다도 획일적인 집단문화에 동화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의 복장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 계기가 생긴다.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에 재학 중이던 시절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된 것. 한국, 스위스, 미국 세 나라의 사진 전공 학생들이 모여 ‘아시아의 미’를 주제로 사진집을 출간하는 작업이었다. 평소에 입지도 않는 한복으로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대신 작가는 당시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대상을 떠올렸다. 진분홍, 주황색처럼 원색의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산행을 하던 중년 여성들. 알록달록한 차림 일색으로 등산에 나선 이들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이들의 초상 작업을 진행해나가던 그녀는 점차 물음표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촬영 반경을 도심으로 넓히자 더 많은 ‘집단’이 눈에 들어왔다. 노스페이스 패딩과 삼선 슬리퍼를 교복처럼 맞춰 입은 남자 중고생들, 고가의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엄마들, 체형에 맞추는 대신 모두 같은 길이로 줄인 교복 치마를 입은 여고생들까지 ‘개인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구’라고 알려진 ‘패션’이 사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변하는 ‘코드’나 ‘패턴’처럼 읽혀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런 여러 군상이 공유하는 갖가지 패션 아이템을 알아가며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지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초상에서 집단 초상으로 형식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촬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들에게 무작정 부탁을 하는 방식이었다. 거절하는 사람들 틈에서 몇몇 사람을 설득해 겨우 촬영에 성공해도, 촬영 동의서에는 사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애써 찍어놓고 발표하지 못한 작품도 많다. 평균 촬영시간은 단 5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셔터만 누르면 되도록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또한 작가의 몫이었다. 결국 작가 박초록은 비슷한 성별, 나이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의 사회적 통념을 드러낸다.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은 너무나 닮은 인물들의 차림새에 얼핏 웃음을 짓다가도, 분명 특정 무리 안에 스스럼없이 동화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급격한 변화와 성장의 이면에 획일화된 집단 의식과, 판에 박힌 군중의 모습을 드러내는 ‘다이내믹 코리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류가 다른 패턴의 자기복제를 계속하는 한, 작가 박초록의 기록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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